삼천포 분향소에서...
밤 하늘이 널찍하다는 생각했다.
우리 노짱님 심심하시겠다.
-욕하고 빈정대는 사람도 없고 사랑과 존경 담아 찾아 가는 이 없는데 누굴 향해 웃고 계실까요.
앞에서 까불까불거리던 손녀가 눈에 밟히지 않으셨나요.
둑길을 한 시간 걸을 거리를 세시간 네시간 걸으며 권양숙여사님과 다시 연애하고프지 않으셨나요.
정말로 우리와 함께 있고 싶지 않으셨나요.
세상에 우리보다 나쁜 사람 더 많이 있다 해도 굴욕스러웠어도 한번 더 생각 해 보시지 그랬어요.
끊임없는 생각은 결국 같았겠지요.
죄송합니다. 오랜 생각끝이었다는걸 몰랐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뎌달라는 바램이 이젠 죄인 되는 기분입니다.
충실한 지지자가 되지 못해 기어이 슬픈 일 당하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세요...-
공설운동장에서 타박타박 걸어 오면서 노짱님 생각하다 하나님과 혼동한것 처럼 기도가 되었다.
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못 이겨 울고 만다.
아직 멀었다는 느낌...
삼천포 분향소에 들렸다가 주변의 무심함에 사방이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몇몇이 모여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니 노짱님 지지자는 아닌거 같다.
얼마나 모이는가 궁금했겠지.
그런 가운데 학생들이 젊은 부부들이 국화 꽃 받아 들고 노짱님영전 앞에서 차분히 고개 숙이기도하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에 잠깐 위안 받는다.
눈치 보듯 얼른 빠져 나가버리는 모습은 되레 마음 아프다.
늦은 밤에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헌화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부끄럽다는 듯 나온다.
슬이 친구라는걸 알고 불렀다.
못 들었는지 막 뛰어 가 버렸다.
옆에 있는 슬이도 미처 잡지 못하였다.
시장통에서 횟집하던 부부가 분향소 안으로 들어간다.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 내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맘껏 울고 싶었을 그 기분 모를리 없는데 분위기가 분위기 만큼 사람들은 조금도 머물려 하지 않았다.
마치 무슨 행사 분위기의 천막 안에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분향소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 천막 주변으로 더 어두운쪽으로 몸을 숨기듯 팔짱을 끼고 오고 가는 이 쳐다 보는 눈빛을 외면하고 생전 모습 보여주는 스크린 앞에 앉았다.
강기갑국회의원을 뽑아준 동네가 이렇게 썰렁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반갑게 다가오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창선에서 칼국수집으로 유명한 사장님이다.
열 세살 짜리 아들의 꿈이 대통령이란다.
노짱님 닮은 대통령이 되라고 늘 아들에게 이른단다.
장사에 매여 봉화마을까지 못가지만 가까이 없을까 찾아 보다가 삼천포에도 분향소가 차려져 있다는 소리에 당장 달려왔다 한다.
거기다 아는 사람까지 만나니 더 반가워했고 평소 노짱님 바라보며 너무나 자기랑 닮은 성격이 좋았다고 하면서 눈시울 적셨다.
평소에 이런저런 이야기 노짱님 억울한 사연에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글들을 나누다 보니 아들은 춥다며 양팔을 감싸 안는다.
밤이 깊으니 많이 춥긴 하다.
바다 횟집에서는 직접 만들었다며 샌드위치를 건네준다.
이왕이면 커피 한 잔 부탁했더니 금방 종이컵에 따끈한 커피가 서운한 분위기 녹였다.
이런분들은 노짱님이 한 푼도 안 받고 억대 시계도 받지 않았다는 걸 믿고 있을거라 확신한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다는걸 확실히 보여줄 기회다.
삼천포에도 노사모가 있어서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 속에 섭섭함이 줄었다.
내 자식 자랑하지 않듯이 일부러 노짱님 자랑하지 않겠다.
알아서 해라...
이 계기로 부정하고 부패한 사람들 반드시 응징하여지길 바래본다.
20년 30년 앞당겨진 슬픔이 아쉽고 많이 후회스러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