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바람.... 바람.... 바람....

삼천포깨비 2009. 10. 13. 12:27

아직 장이 이른지 감을 따가지고 온 아줌마 주변에 앉아서 한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슬이야. 감 좀 사가라. 너무좋다.

안녕하세요? 이젠 집이 멀어서 들고 다니기가 그래요... 감은 맛나겠다.

아나. 맛 보고 좀 사라.

연신 깍아 대던 두부가게 아줌마는 사뭇 거칠게 말하면서 꼼짝 못하게 했다.

언니. 나 11시에 가게 보러 온다고 해서 나왔다가 3시로 연기하길래 시간 나서 장에 와 봤단 말야. 이거 어떻게 들고 다녀. 팔 빠지겠다.

그럼. 앉아서 놀다 가라.

이것저것 살것도 있고. 똑순이 언니도 가게 나갔다며?

하. 몸을 고쳐 가꼬 온다고 2년동안 넘가 줬다드라.

그러게. 이제 그만 벌고 몸 좀 편하게 살지. 뭐할라꼬 저래 돈밖에 모르는지 모르겠어.

 

언니~ 그만 뒀다며?

나는 몇 걸음 옮겨서 똑순이 언니한테로 갔다.

2년만 쉴라꼬...

전어는 얼만데?

키로에 2만원. 꽁치는 담아 놓은거 만원.

엥? 엊그제 만원 하더니 그새 이만원씩이나? 난 만원어치만 줘요.

몇 마리 안된다. 알고 먹어라.

한 두어마리 더 줘야징...

아이고. 내한테 오는 손님은 드세서 내가 안 주고 못 배기지... 앞으로 내 없어도 여기서 마이 갈아줘라.

알았어요.

 

어머 언니! 시장에 어쩐 일이고예? 저번에 가게 문 닫은거 같더니 다시 장사하데?

장사 넘가 줬다. 이제 내가 안 한다.

어? 엊그제 지나가다가 봤는데. 들어 갈까 하다가 슬이아빠가 사시미 먹고 싶다고 해서...

며칠됐다.

와예?

아저씨가 어디 갔다...

어디?

멀리...

왜? 바람 났나?

엉. 바람 났다.

에이. 누구하고 바람 날끼고? 진짜 어디 갔는데?

바람나도 크게 바람 났다.

진짜?

국밥집 언니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얼떨결에 인사하고 말았다.

담에 보입시더...

그러자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얼굴엔 어디 아픈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신아~

저 언니 아저씨 진짜 바람났나?

돌아가셨다.

에엥? 무슨 소리고? 며칠 전에 봤구만.

갑자기 자전거에서 내려서 쓰러졌는데 그 길로 돌아가셨는갑드라.

어머나 세상에....

근데 언니는 나보고 어디 갔다고 해서 난 농담조로 바람났냐고 했지.

아저씨가 생전 이 근방에서 벗어나는걸 못 본거 같은데 말야.

저 끝에 식당 아저씨도 얼마전에 안 돌아가셨나.

거긴 왜?

암이라는데 오래 됐다드라. 국밥 아저씨는 너무 멀쩡하다가 갑작스레...사람 일 모른다. 니 장사 안 하기 잘했다. 앞으로 하지 마라.  죽어도 하지 마라.

이그. 장사 안 한다고 살고 한다고 죽나? 다 스트레스라지만 가게 할 자리 살피고 있다. 스트레스 덜 받는거 없을까?

편한 장사해라. 이제.

세상에 그런 장사 어딧노? 다 애로 사항 있니라...ㅎㅎ

3시에 가게 보러 온다고 해서 가 볼란다. 다음 장에서 보자.

그래.

할매~ 언니~ 갑니다아~~

 

슬이아빠~ 국밥집 아저씨 돌아가셨다나봐.

언제?

엊그제 우리 봤잖아. 그 다음날 가셨나? 아무튼 갑자기 쓰러져서는 그대로...

본인한테는 진짜 좋은기다. 아무것도 모르고 편하게 갔으니까.

난 그것도 모르고 바람났냐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래 바람나도 큰 바람 났다면서 웃더라.

그 아저씨 복 많은 사람이다.

세상 버리기엔 아직 멀었는데 얼마나 아쉽겠노?

니 모르는 소리다. 아파봐라. 결국 못 먹어서 죽는건데... 가게는 사람 왔드나?

아니? 나는 바람 맞았지 머. 아침부터 나갔다가 나중에 온다고 해서 시장에 갔다가 시간 맞춰 왔는데 전화도 없드라.

가게 안 나간다. 신경 끊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이따금 기절 할 일이 생긴다.

시장에서 기절할 만큼 놀랐지만 난 지금도 기절하고 싶다.

슬이아빠가 한 말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