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이아빠가 로또를 사다...
슬이아빠가 광양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틀을 출퇴근하다 도저히 힘에 부치다면서 회사에서 마련한 아파트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사흘만에 집에 온다는 전화를 했다.
그것도 야근까지 하고 아홉시 다 되어 집에 도착한 것이다.
세상에...
얼굴이 반쪽이다.
얼굴색은 윤기없는 흑인처럼 까맣다.
며칠 사이에 조금씩 아팠던 사람이 야윈듯 입은 옷마저 헐거워 보였다.
얼굴이 엉망이네...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러치머.
이상한 일은 힘들다고 늘 말은 하면서도 일을 그만 두지 못하였다.
저녁상 대신 간단한 술상으로 티비를 잠깐 보더니 자리를 깔으란다.
절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거실 전기장판에 온도를 높이고 슬비는 재빠르게 맨소래담을 들고 대기중이다.
아빠가 빨리 자리에 누워야 자기가 보고 싶은 '천만번 사랑해'를 볼 수 있는것이다.
아빠. 엎드려.
반바지만 입고 반팔티는 벗겼다.
어디서 본 듯한 솜씨로 손바닥에 듬뿍 짜더니 양손을 짝짝 치다가 어깨쭉지에 철퍼덕하고 내리친다.
야. 이불에 다 묻는다.
아빠. 내가 시원하게 해 줄께.
슬비는 팔에서 어깨로 등으로 조물조물하면서 눈은 티비에 꽂혔다.
내 눈에는 아빠라는 존재... 딸이라는 존재가 꽉 들어 찬다.
보기 좋다.
늦게 까지 잠을 잘것이라고 하더니 여섯시 되지도 않은 시간에 벌써 깨어 있다.
신문이 왔는지 나갔다가 빈 손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갔다.
머 마실꺼 줘?
응.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했다.
고생하다 들어 온 사람한테 최소한 예의다 싶어 눈 비비고 냉장고에 과일하고 마를 꺼내고 요구르트를 넣어 믹서에 갈았다.
양이 좀 많은가 싶었지만 입도 안 대고 줬는대 남김없이 마시고 빈 컵을 내민다.
비가 온다.
아침을 먹고 다시 눕는다.
눅눅한 날씨라 작업복이 마르지 않았다.
거실로 작업복이 널린 건조대를 들여 놓고 세탁기에 흰 빨래를 돌렸다.
다 말려서 다시 보따리를 싸야한다.
시계를 보니 교회 갈 시간 놓쳤다.
차를 태워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교회를 가까운 곳에 옮겨야겠다는 결심이다.
특별식이라곤 따로 만들지 않고 속을 보 할 수 있는 팥죽을 만들었다.
한 그릇 뚝딱 하더니 반찬 없어도 먹을 수 있으니 애들 많이 먹이라 한다.
아빠.죽이라면 물이 많아야 하자나? 엄마가 만든 팥죽은 물이 없고 밥이야. 난 팥죽을 좋아한단 말야.
이게 팥죽이 아니고 머고?
이 팥죽 말고...
먹기 싫음 말어.
숟가락만 들고 잔소리하는 슬비 팥죽 그릇 뺏어서 내가 다 먹어 버렸다.
엄마가 맞나?
아니? 밖에 나가 봐. 멋있는 여자가 아이구 우리 슬비야... 하면서 좋은 집에 뎃구 갈거다.
진짜?
어....
헐....
늘 슬비랑 엄마는 티격태격으로 끓는 피 식을 줄 모른다.
또 다른 특별식으로 슬이아빠가 즐기는 음식이 있다.
공수부대에 있을 때 제일 맛있게 먹었다는 닭고기와 김치를 넣고 두리치기한것이다.
닭 한 마리를 한소큼 끓이다 물을 딸구고 신 김치를 숭덩 썰어서 간장 약간 참기름에 약간 매운 고춧가루를 버무리어 자글자글 끓여 내면 냄새부터 죽인다.
와. 이게 무슨 냄새야?
다 이어 갈 무렵 슬비가 제일 먼저 알아 차렸다.
엄마. 내가 팥죽 안 먹길 잘 했지...
이런. 내가 잘 못했다. 저 애 배를 빵빵 채웠어야 내 몫아지가 돌아 올긴데 말이다.
슬비는 지금 밖에 부잣집 엄마가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해도 무조건 사양할 태세다.
닭집에서 제일 큰 놈으로 잡은데다가 김치까지 들어 갔으니 푸짐하기도 하다.
엄마. 너무 맛있다.
기막힌 맛도 있으려니와 먹는 동안 잠잠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다른 아침이 찾아왔다.
밖에 비가 오는지 확인하는데 하늘은 뽀얗기만 하다.
슬이아빠는 비를 기다리는 눈치다.
하루를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을까.
머뭇거리는 슬이아빠를 똑바로 쳐다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꺼내는 종이 두장이 눈에 들어 온다.
이게 뭔데?
로또. 두장 샀는데 하나는 걸렸드라. 번호 세개 맞으면 된다며.
세갠지 네갠지 몰라.
진짜 이상하네. 내가 샀어도 난리가 났을거면서.
이제는 로또가 정답인거 같아서...
지난번 친구가 로또 당첨 되었다는걸 전해 듣고도 전혀 동요되는 느낌도 없더니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갑자기 함정에 빠져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월급 날짜에 맞춰 돈이 딱딱 들어 온다면 날짜라도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터인데 오히려 월급 날짜가 돌아 오는게 두려울 정도다.
이상황에 로또를 샀다는 슬이아빠 마음을 읽으려니 무거운 돌맹이에 꾹 눌린 기분이다.
부질없다는걸 더 잘아는 슬이아빠가 로또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