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즘 마음에서 잔꾀만 생긴다.
김장을 할까 했다가 쇼핑몰에서 가격 비교하고 추천후기를 읽어가며 요목조목 따지다가 10키로 구입했다.
슬이아빠한테 김치만 보면 짜다는 소리에 전라도김치랑 서울김치랑 어떤게 좋을까 고민도 했다.
서울식 김치로 정했고 배추에서 양념까지 국산이라는 표기에 값도 적당해서 만족했다.
슬이아빠는 잘 먹다가 인터넷에 구입했다고 하니 그만 젓가락을 놓는다.
다음날 밥상에서도 김치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럼 김장할까?
손가락만한 뽈라구 좀 사다가 담아 봐라.
잉? 그게 얼마나 비싼데? 옛날에 자기 엄마 계실적엔 고대구리배가 막 잡아와서 다라이째로 싸게 퍼주니까 김장에 넣어 버렸지만 요즘은 그나마 씨알도 없다면서 열댓마리 놓고 만원씩 받더라.
그래 비싸나?
비싸도 구경이라도 하면 좋게?
나는 밥상머리에서 몸을 기울여가며 귀 가까이 대고 더 작은 소리로 쥐라도 들으면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
당분간 김치투정은 안할것 같다.
슬이아빠한테 나 혼자 아는 비밀처럼 말 해 놓고나니 내 마음이 찔렸다.
우선 김장을 할려니 몇 포기를 해야할지 딸랑무우는 또 얼마나 담아야할지 양념고춧가루랑 마늘이랑 장날에 구할지 쌀성님한테 부탁을 할지 생각부터 해야 했다.
정말 뽈락이 비쌀까?
구경도 못하는게 맞나?
위기모면용 멘트가 대충은 들어 맞을것도 같지만 뽈락 철이라고 잡히면 거짓말한것이 된다.
며칠을 김장문제로 고민이 되었다.
강원도에서 전화가 왔다.
희야. 한번 안오나? 화야신랑이 취임식한다고 하는데.
언제?
아직 날짜는 안 정했다는데 곧 한다드라.
엄마는. 날짜 보고 전화를 해야지...
김장 했나?
아니?
우리는 그냥 절인배추 사다가 그냥 치대서 하기로 했다.
엄마. 양념 어떻게 해야 맛있어?
니가 하는거 맛있던데. 왜?
슬이아빠는 맨날 맛 없담서 안 먹으니까 내도 맛 없는거 같어.
희야. 장날에 아빠 옷 두어개 사서 보내라. 안에 담이 들어서 따신걸로 110이라야된다. 앞에 주머니 있어야하고. 여기는 110을 안 갖다 놓더라.
알았어. 장에 가 보고.
엄마가 옷을 사서 보내라는 말끝으로 겨우 대답만 하고 이내 끊었다.
동생남편이 전출하면서 취임식까지 한다고 하니 빈 손이면 안 되는거고 왔다 갔다 경비며 김장이며 엄마는 아빠 티 사서 보내라고 한다.
우선 장에 갔다.
엄마가 말한대로 차이나 카라에다 윗주머니가 있고 안쪽에 융이 있어서 따뜻하게 보이는 옷을 골랐다.
싸이즈 110 있어요?
네에. 여기. 만삼천원인데 만원만 주세요.
싼거예요? 비싼거예요?
내가 마음이 좋아서 싸게 파는거예요.ㅎㅎㅎ
아저씨는... 저두 장사해봐서 다 알아요. 두장주세요.
동생네 가게에 들어가 옷이 든 봉지를 내 밀고 택배로 부치라고 했다.
친정에 부치는거라고 하니 택배비는 자기가 되겠다면서 택배비를 안 받았다.
엄마는 왜 가게앞에 장꾼들 오면 옷을 쉽게 사서 보낼 수 있는데 집에서 얼마나 먼지 뻔히 알면서 나한테 부탁하는겐지 서운했다.
돈이 많든 적든 돈을 만지고 있는 동생이 사기가 훨 수월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두 말 않고 샀고 보냈다고 전화를 했다.
엄마는 고맙다면서 다시한번 재차 묻는다.
옷이 차이나 칼라 맞지?
응.
아빠 옷은 담배 넣는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알어. 엄마.
알았다. 끊는다.
응.
며칠동안 통화도 못하고 남편취임식이 언제인지 물어 볼 겸 전화를 걸었다.
니가 전화해..
난 얼른 끊고 전화를 기다렸다.
집에 있으니까 집전화로 통화하고 방해하는 사람 없는것도 좋았다.
언니 왜?
어. 엄마한테 전화 왔는데 신랑 그거 날짜 언젠야? 가려면 내가 움직일 날짜하고 맞으면 더 좋을거 같고. 안되면 느그한테 맞춰야하자나.
아직. 몰라. 내일쯤? 이번 달 안으로는 가야하니까 곧...
아. 엄마는 있자나. 복이가 사도 되는걸 나한테 아빠 옷 사라고 해서 내 내려가서 사서 보내주고 왔다. 양덕원에는 그 옷 없냐?
언니. 엄마. 다리 많이 아퍼서 잘 못 다녀. 언니가 사서 보낸거 잘했어. 엊그제 엄마가 나한테 전화가 와서 애들 학교 갔냐고 해. 놀토라서 안 갔다고 했지. 그리고 그때 시간이 아홉시가 훨 넘었거든. 왜 그러냐고 했더니 병원에 가야하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고야. 언니. 나는 엄마한테 누누히 얘기했어. 엄마 병원에 갈려면 하루 전날 밤에라도 전화하면 무슨 일 있어도 엄마 아침 일찍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오면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다고. 예약도 미리 해 놔야하고. 그러면 두시간씩 안 기다려도 돼. 엄마는 그게 미안하다고 전화를 안하고 있다가 꼭 갈 시간에 바쁘냐고 물어 보고는 알았다고 그냥 끊어 버리는거야. 엄마 다리 많이 아퍼서 언니가 샀다고 생각해.
그렇게 심각해? 자야한테는 잘 가나? 내 며칠을 전화 안해서 모르겠다.
어. 아빠는 아프면 입원이라도 하지. 엄마는 맨날 저렇게 참으니까 더 아픈거 같어. 언니. 경자언니는 자기가 필요할 때만 전화해. 사흘을 내가 청소도하고 다 해줬는데 언니는 볼일있다고 나가고 그래.나도 내 일 있잖아. 군인들 머리 깍아주러도 가야하고 모임도 가야하고. 요즘 골프도 못쳐... 시간이 있어야지. 이젠 안가는데 언니가 저녁때만 와서 우리집에서 밥 먹고 가. 그런데 엊그제는 저녁에 밥 먹으로 온다고 해서 우리 신랑까지 안 먹고 기다렸는데 안 오는거야. 그래서 왜 안 오냐고 했더니 밖에서 밥 먹었다고 하는거야. 아니. 먹었으면 전화를해야 알거아냐. 우리는 밥 안 먹고 저 기다리는데 사람 골려? 그래서 이제 전화는 하라고 그랬어. 먹으러 오기 전에..
신랑이 자야보고 친정으로 들어가라고 했다며?
그러니까. 엄마가 얼마나 아픈데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듣지. 암환자보고 밥을 못해줄 망정 밥 차리라고 하질 않나. 아들도 그러니까 그 모양이지. 즈그 엄마한테 학교에 차태워달라고 하니. 지각하니까 선생이 즈그 아빠한테 뽀르르 전화를 해서 지각했다구 해서 집에다 난리폈잖아. 언니는 이럴 때만 자기 얘기하니까 답답해서 신경 끊구 싶어. 어머. 언니. 나 모임 있어 나가봐야해.
응. 끊자.
댓발 튀어 나온것 같던 내 주둥이가 어느새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기분이다.
잠시지만 엄마는 내 마음 아랑곳 않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내 생각부터 하는것이라고 여겼다.
돈도 크게 드는 일 아니어서 기분 좋게 해야한다고 위안하고 슬이아빠한테 엄마가 웬일로 아빠 옷을 사서 보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입을 시간 있어야지... 가지고 와봐.
응???
슬이아빠는 엄마가 자기 옷을 사서 보낸 줄 알았던지 이야기한 옷을 보자고 한다.
그게 아니고 엄마가 사서 보내라고 했다고...
지금까지 슬이아빠 잠바 목도리 신발 티 바지 열조끼까지 받기만 했던거 같다.
며칠째 김장은 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
슬이아빠가 어쩌다 집에 오니 김치타령은 안 들어서 그런지 모른다.
아침부터 엄마전화다.
왜. 엄마...
김치통 빈거는 있나?
응. 김치 두통이나 있고 나머진 비었지.
내가 배추 열포기 샀거든. 양념 버무려 놨고 내일 배추 절이고 김장해서 보내주꾸마.
엄마. 엄마 김장도 절인 배추 샀다며. 머할라꼬 배추사서 아픈다리고 절인다고 그래. 김장할 때도 화야가 와서 다 도와줬다면서 화야 알면 어쩔려구.
안그래도 화야가 김장 했는데 배추 뭐할라꼬 사냐고 하드라. 화야친구한테 배추 샀거든. 내가 쌈 싸먹는다고 했다. 화야는 니 해주는거 모른다. 자야도 모르고 복이도 모른다. 알았제?
엄마............알았어. 엄마. 일단 끊을께.
나는 엄마 마음 모른다.
가슴속을 파면서 단숨에 흘러내리는 내 눈물 엄마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