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우리 가족이라는 말에...
삼천포깨비
2009. 11. 24. 23:30
얼마전 모아파트에서 여자 떨어져 죽었다는 소리 들었나?
아들 죽이고 떨어진 여자?
아니. 그 맞은 편에 그거 말고 또 죽었다. 그 소리 듣고 신랑보고. 봤제? 평생 돈 안 벌어준 남편 때문에 저래 죽었다...하니까. 사람 같으면 이래 저래 그 자리에서 느끼는게 있을까 싶었지. 하는 소리가 먼지 아나?
먼데?
죽을년이니까 죽지. 아무나 죽나? 하면서.. 내 신랑이라도 이래 무심한 소리 한다.
내는 어떤데... 삼월이 생일인데 시월에 니 생일 안 다가 오나? 하드라. 그래서 다가 온다. 했다.
멀쩡한 삼월 생일 시월에 왜 찾노 말이다.
말 마라. 내는 내가 입을 쪼사서 팬티 하나 얻어 입었는데 마침 내 친한 친구가 같이 있었는기라. 신랑이 팬티 두 개 사 오더니 한개는 내거 한 개는 친구꺼. 그런데 한 개는 싼 거 한 개는 비싼 거 였어. 마누라는 싼 거 입어도 된다면서 싼 거 주고 친구는 체면 차린다고 비싼거 주는거야. 내 평생 그거 하나다. 싼 팬티 하나...
그만해라. 다 잘하면서 돈 까지 잘 벌어다 주면 여자가 오래 못산다. 다 감사해라.
잠자코 듣고 있던 나이많은 김집사님이 듣다 못해 소리를 질렀다.
그 날 따라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오후 예배전에 남는 시간 잡담은 마치 한 풀이 라고해야 맞겠다.
자주 모이라... 주님이 가까울 수록 주님을 붙들고 있으라는 목사님 말씀엔 아랑곳없이 평소의 걱정과 내 식구든 남이든 흉보기였다.
여자 셋 모이면 접시 깨진다는데 다섯 모였으니 항아리 깨지고도 남을 만큼이나 불평 불만이 흘러 남쳤다.
세상에 살아 있는 것에 남편이 있는것에 감사가 흘러 넘쳐 나는 여자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 악물고 스스로의 운명에 저주하면서 견디는 여자 부지기수다.
끝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고통에 자유롭고 싶다는 심정은 늘 가지게 마련이다.
일상탈출도 가끔씩 느끼게 하는 충동적인게 아니다.
늘 의식하면서 갈망했고 처지를 비관하다 보면 자살로서 자유로움으로 일종의 나를 찾아 나선것이 아닐까.
그 누구도 방해 받지 않을것 같다는....
나중에 죽은 원인을 밝혀진다고 되돌려지진 않는다.
내 탓이라고 느끼고 통곡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 오진 않는다.
왜 죽어야 했는지에 탓하기 보다 어떤 존재였는지 살펴 주었으면 죽을 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야기를 들으면 가족으로부터 일을 하는 가운데 자유롭지 못하다는 처지에 많이 비관했을 심증이 굳어졌다.
나라고 편했을까마는 늘 남편으로 부터 그게 어디 고생이냐는 말에 죽을만큼 힘들었다.
고생을 시키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더 힘들게 사는 여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비아냥거렸다.
나도 남편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나를 싫어 하기 때문에 싫어 했고 미워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아줌마들의 수다와 마찬가지로 할 이야기가 더 많으면 많았지 작진 않았다.
보통 이혼 부부들의 사유가 성격상이라면 우리 부부는 백번도 넘게 이혼 하고도 남음직 하다.
그러나 그에 반한 이유가 많았다 하더라도 이혼을 염두에 둔 적도 없었다.
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고 여기면서도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이라고 자살마저 미루고 체념하며 살았다.
남편이 어느날 변해갔고 지금은 가족을 위해 힘든 고생 마다 않고 객지 생활이다.
본인의 말을 빌자면 변한게 아니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ㅎ
남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남편이 눈물나도록 고마운 사람으로 곁에 있는것이다.
이제 전적으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밥을 먹고 차를 타고 고기를 굽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전에 나가서 벌어다 준 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사가 안 되면 나가는 돈을 메꾸기 위해선 일자리를 구했고 그 돈으로 땜질은 했다.
고맙다기 보다 급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떠밀리어 나가야했고 곧 일자리를 그만 두었다.
그러니 죽으나 사나 내가 장사를 하고 일을 해야 먹고 사는 길이라 여긴것이다.
이젠 당분간 고생을 맡아 하겠다는 말에 감동 먹었다.
보태지는 못할 망정 함부로 축내지 말자며 아이들과 약속을 하였다.
매일 목욕을 하지 말것이며 방 하나에 같이 잠을 자며 물도 아끼고 전기도 아끼자면서 손가락을 걸었다.
슬비는 아빠 오는 날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되었다.
삼겹살 굽는 날이다.
슬이가 굽고 슬비는 입에 넣기 바쁘고 아빠는 소주를 더 맛있게 마신다.
슬비가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고 체할까봐 걱정한 부분도 있지만 아빠 몫까지 다 먹어 버릴까봐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나다를까 슬비는 금새 볼따구니가 부어 오르고 아빠는 자꾸만 슬비에게 먹으라면서 익은 고기를 집어서는 내 밥그릇에 얹어 주는것이다.
난생 처음 남편이라고 붙어 살면서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던 순간이다. 아아...
슬비 궁둥이를 토닥이며 다시 고기를 먹게 만들면서 분위기는 부드러워졌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모처럼 일찍 마치는 날 저녁 식사를 국밥집에서 먹게 되어서 계산을 내가 했거든.
아빠. 카드 쓴거 엄마 폰에 문자 다 날라 온다. 아빠는 엄마한테 죽었따.
슬비야...
슬비를 보고 눈을 흘기면서 남편 얼굴을 쳐다 봤다.
다 들 서운한 듯이 이차 가자고 해도 말렸더니 하나가 앞장 서서 노래방 간기라.
제일 먼저 앞장 섰을 남편이 본인이 아니고 다른 이라는 말에 이상한 일도 다 있다면서 쳐다 봤다.
술하고 안주하고 여자하고 셋트로 따라 오데. 열두시까지 잘 놀고 왔지. 여자들이 다 서른에서 마흔 몇살까지 있는데 가슴 빵빵한거며 타고 났어...
좋드나?
좋제...ㅎ 다 돈 벌어 가지고 한방에 그런데 쓰는거 보면 아까운데 그 맛에 돈 버는것도 같고... 그러니까 맨날 그짝이고...
안그래도 동생이 나보고 언니 그 동안 돈 안 벌어 놓고 뭐 했냐고 하드만. 먹고 산것만도 어딘데 돈 벌어 놨냐고 물어 보니 기가 막혀 죽겠어. 그러는 즈그는 돈 모은것도 아니면서.
운 안 따르면 돈이 모아지나? 건강하면 그나마 낫지.
이슬아. 니 잘 들었제? 먹는거라도 잘 먹고 아프지 마라. 제발. 대학 안 가도 살고 공부 못해도 다 산다.
니까지 공부해서 공부 다 잘 하면 우리나라 망한다. 니 하고 싶은게 뭔지 단디 생각이나 해 봐라. 엄마하고 같이 장사 할라면 하고 집을 팔아서라도 밀어 주꾸마.
에고, 또 쓸데없는 소리는...
그래도 우리는 지킨게 있다 아이가..
먼데?
우리 가족...
늘 유감스럽던 말들과 다르게 우리가족이라는 말에 가슴속에 치고 받던 고문을 끝내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누구처럼 헤어지지도 않았고 나도 죽지 않아 지켜 온 것이다.
이 또한 감사할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