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깨비 2005. 6. 9. 23:22

"내일 비오나...?"

"내일.. 모레.. 곱패까지 온다네..."

"아측 부터 온다든가예?"

"머가 걱정이고?"

"비가 오면 파 놓은 감자에도 싹이 나뿐다 아입니꺼?"

"꼭 주일되면 비가 올라카네."

"이번엔 양이 많다드라."

조용한 시잗통에 심심한 말들이 오고 갔다.

어차피 할 말들은 없었다.

 

"행주. 수세미. 치약. 치솔. 유리. 거울 닦으세요~"

끌고 다니는 시장바구니에 잔뜩 담아 싣고 조금씩 조금씩 발을 떼면서 외친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아저씨다.

마침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남자와 여자가 손짓 발짓 하더니 만원짜리 밀대를 사서 들고 간다.

 

아저씨는 한국말로 외국인은 쌀라 쌀라...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죽겠다고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는 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이슬아~ 통역 해 봐라."

"내가 통역 할 줄 알면 요기 머할라꼬 있어요?"

통역이고 뭐고 필요없었다.

아저씨는 밀대를 팔았고 외국인 남자는 만원을 건넸다.

사고 파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걸 할머니들은 너무 답답해 했다.

 

흐렸지만 햇볕에 반사되어 하늘이 눈부셨다.

덜컥 어둠이 깔렸다.

"아이구~ 어두바 죽겄다."

철띠기 할매가 벌써 비가 오나 싶어서 걱정스레 하늘부터 본다.

"낼 비온다 카드만요. 아지매요..."

돈을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을 꺼내서 집어 넣더니 같은 처지라며 친절히 대꾸한다.

 

어디서 꾸다당 소리가 났다.

인삼집쪽으로 눈이 갔다.

인삼집 며느리는 야채를 다듬다 말고 일어서는게 보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게 보였다.

나중에사 알았지만 가게 안이 아니고 골목 안이었다.

철띠기 할머니는 놀래서 일어났다.

"아요~ 어데고? 먼 일이고?"

"이슬아~~ 119 좀 불러라"

수박언니는 핸드폰으로 누르면서도 일반전화가 있는 우리가게에다 소리질렀다.

핸드폰으로는 통화가 안된다고 한다.

슬비가 119를 눌렀고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쫒아 들어오더니 수화기를 뺏어 들었다.

"빨리 좀 오이소. 여기 중앙시장인데예... 인성의원 골목으로 오시믄 됩니다."

 

수박언니와 무슨일인지 몇마디 나누기가 무섭게 119요원들이 시장통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시장 가운데 쯤 오자 양쪽 길에서 서로 다급하게 불러댔다.

이쪽으로 가도 되고 저쪽으로 가도 다 통하는 길이다.

제일 먼저 들어온 요원이 주춤대다가 소리가 큰 쪽으로 냅다 달렸다.

뒤를 따르던 요원이 다른 방향으로 달린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인삼집 앞에는 떼거리로 몰려서 웅성웅성거렸다.

 

화장실 가는 골목길에서 혼자서 밥장사하는 아줌마가 선풍기 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다 뒤로 넘어졌단다.

또 한 사람은 밥상을 이고 가다 엎어졌단다. 그래서 소리가 났단다.

걸음으로 재도 이십보밖에는 안되는 거리에서 말이 틀려도 너무 틀린다.

우리집 꼬맹이 슬비가 어른들 틈에서 보고 오더니 제깐엔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쫑알거렸다.

땀까지 이마에 삐질대면서 입까지 바쁘다.

잠시 후...

119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 나왔다.

밥집 아줌마는 한 손을 이마에 올리고 눈을 감은 채 였다.

목에 깊스를 한걸 보니 심하게 다친거 같다.

 

번영회 회장님과 사무국장은 남해로 문상을 가고 없었다.

총무가 무슨일인지 내다 보다가 전 사무국장이 비상연락망을 찾아보라는 지시에 사무실로 뛴다.

'별 일이야 있겠냐'고 하면서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이 이제 오십줄에 벌써부터 건강은 좋지 않은 상태였던걸 아는 처지라 수근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렸다.

젊어서부터 술을 좋아했다나 어쨌다나...

요사이도 밥그릇 씻다 말고 술 마시자고 하면 술자라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한다.

술이라고 여자 남자 가릴리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