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콩을 폴러간 영감은...

삼천포깨비 2005. 6. 15. 23:30

저녁 무렵이다.

시장통이 사람은 사람대로 팔려고 내 놓은 물건은 물건대로 지친 모습으로 침묵속이다.

떠든다고 나무랄 사람없는데 통 입을 열지 않는다.

언제나 싸우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 자랑삼아 하는 손주놈 이야기도 없었다.

삼순이가 궁금했고 인간극장이 궁금했다.

무엇이 맘에 안들어 왜 말을 안하는지 뻔하다.

장사 안된다고 철띠기 할매가 죽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했다.

옆에 듣고 있던 미자 할매가 입을 딱 다물게 만든것이다.

"고마해라. 시끄러버 죽겠다. 니만 장사 안되는게 아이다. 니만 입 터진거 아이다."

철띠기 할매는 무안했던지 강제적으로 큰 몸을 일으키면서 허리를 제켰다.

오줌 마려운 시늉을 하면서 팔을 뒤로 흔들며 화장실이 있는 골목으로 빠졌다.

 

선이 할매가 자꾸 가게 안쪽에 있는 벽시계를 쳐다본다.

할아버지는 마칠 시간이면 어김없이 마중 나오신다.

오늘따라 늦어지는게 심상치 않게 느끼는거 같았다.

선이할매가 몸을 돌려서 소쿠리 정리하는 동안에 때 맞춰서 할아버지가 말없이 서 계셨다.

선이할매는 놀란듯이 찔끔거리면서 차곡이 쌓아놓은 소쿠리를 말없이 디민다.

어디서 무얼 하다 늦었는지 따지지도 않았다.

시계만 쳐다 보면서 기다렸다는 표시 하나 없이 전혀 무관심한 표정이다.

 

"어이구~ 저 할마이는 할배가 있어가 이다주고 날라주고 참 조케따."

미자할매는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앉은 채로 한마디 한다.

"할매는 할배 없나?

"내? 우리 영감은 콩 폴러 갔다!"

"잉? 콩을 폴러가는게 머고?"

"영감 죽으면 콩 팔러 갔다 칸다 아이가?"

"진주 할매~ 콩 폴러 갔다는 말 먼 뜻이 있는거라예?"

"영감 죽읏다는 뜻 아이가?"

"그러니까... 죽었으면 죽었다카지 와 콩을 폴러가냐고?"

"우리 영감은 내 서른 다섯에 콩 폴러 갔다."

"아직 안 완나?"

"하아~ 아직 기별도 엄네."

"와 그라지? 와 콩을 파노?"

"죽었다 소리가 안 좋으니까 콩 폴러 갔다고 하것제. 남들이 다 그러카데...그러니까 콩 폴러 갔다하면 죽었는갑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