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풍경

추워서 눈물 나는 겨울.

삼천포깨비 2005. 12. 17. 01:10

 

 

 

 

"날이 썸뜩스레 춥다."

"겨울 날이 다 그렇제."

"그래도 어지가이 추우야제."

"허긴 초겨울에 이런 추위는 몇 십년만이라데?"

"쫌 풀리야 사람도 기 나올거 아이가?"

 

할머니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 들으니 어제 전혀 싸운 사이가 아니다.

너 없으면 못 산다는 식으로 제법 다정하다.

나야 말로 어떤 날은 하루라도 빨리 시장통 떠나고 잡고

어떤 날은 어디가면 이런 데가 있겠나 싶을 정도로 행복감에 젖는다.

 

난로 앞에 바싹 다가 앉아도 발목이 시리고 허리까지 심상치 않다.

발가락이 동상에 띵띵 부어도 넘어갔는데

허리는 이상이 있을까봐 걱정이 살며시 파고든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봤다.

큰 통증이 없는데 우릿한게 짜증스럽기만 하다.

할 일 없이 앉아 있자니 아픈 곳만 짚히나 보다 생각하며 시장 한바퀴 돌았다.

 

맨 위에 산 물메기 잡아서 말린것이다. (개당 오천원)

두번째는 찐 고구마 썰어서 말린것이고.(오천원어치)

세번째는 말 안해도 한 눈에 알아 볼거지만 정말 달다. 곳감이다.(만원어치)

네번째는 참 호래기라고 한다.(이만원? 조금 비싸다.)

 

그 사이 반 술된 손님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형수~ 오랜만이제요?"

"먼 술을 그리 마시고 다니노?"

"딱 한 병만 주이소. 그것만 먹고 가께여."

"이제 한 살 더 묵는다 아이가? 술 좀 그만 마시라."

"이거만 묵고 안 묵으께."

손님은 애기처럼 순하게 말하면서 오뎅국물 떠 먹는 컵에 소주 반 병을 들이 붓는다.

"술 안 먹는다는건 거짓말이고 얼른 마시삐가 없애야지 머..."

어째 슬이아빠가 가만 있는가 했더니 결국 한 술 더 뜬다.

내가 미치~ 미치~~

 

이 총각 사연이 참 많다.

근데 장가 간단다.

베트남 처자인데 열 아홉살이라니.

마흔 넘은 총각에다 팔도 하나 없고 직장도 없는데 베트남 처자가 불쌍하다.

잘 살까?

못 살까...

애 만들고 도망가면 이 총각은 또 어떻게 될까...

 

작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누구보다 일 잘해서 술이 떡이 되어 있어도 배에 태워 나갔다고 했다.

바다에서 굵은 신체건강한 총각이 어느날 뜻밖에 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에 가는 트럭에서 떨어지는 쇠줄에 감기어 한쪽 팔이 잘리어 나갔다.

팔이 떨어져 나가면서 정신을 잃었다는 총각 말을 들으면서 막 울었다.

 

교통사고 나던 날 그 총각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한번도 병원에 찾아가 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퇴원해서 웃는 얼굴로 가게에 왔다.

벌써 한번 두번 시장통에 들어왔다가 차마 인사 못하고 돌아섰다고 했다.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을 자기가 미안해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앞으론 술 안 마신다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더니 오늘은...

술 안 마시고 본 적은 거의 없다.

살려고 태어났는지 죽을려고 태어났는지 모르는 판국이지만

늘 보면 술을 마실려고 태어난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어째 술 안 먹나 했다.

어쩌다 한번 그런 날 지나갈 때는 말도 잘 안했다.

오늘 해야 할 말이 많아서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