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피자 대신 아이스크림으로...

삼천포깨비 2006. 5. 23. 00:31

"슬비야~ 얼렁 일어나... 오늘 시험인데 정신 차리고 책 좀 보고 가지 그래?"

"어제 다 했다."

"어제 하면 오늘은 안 하는기가? 한 시간이나 했나?"

슬비 얼굴을 쳐다 보니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앉아 대답을 안한다.

"삼십분?"

"어~ 엄마~ 나 평균 칠십만 넘으면 안돼? 안 넘으면 어떡할긴데?"

"어떡하긴. 쪼까 내야지."

"평균 팔십 넘기면 안 쪼까내나?"

"팔십이 머고? 구십은 보통이고 구십오 정도는 되야... 아주 잘 했으면 피자 사주께."

"나... 피자 안 먹을래."

 

내가 졌다.

차라리 말을 하지 말껄...

언제나 입만 살아서 탤런트가 되겠다고 자신만만하던 슬비가 기운없이 학교 갔다.

 

하루종일 내 온 신경은 슬비가 시험을 잘 치는지에 자석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제딴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좋은 기미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가끔씩 진지하게 모의시험지를 들여다 보면 한참이나 모자라는 아이처럼 엉망인 점수를 생각하면 걱정도 일어났다.

그러던 중에 앞집에 재민이는 시험을 잘 치고 왔는지 자전거 사달란다.

옆집에 혜원이는 컴퓨터 한 대 더 사내라고 한다하니 시험을 꽤 잘 쳤나 보다.

 

슬비가 웃음을 띤 얼굴로 나타났다.

가만히 보니 좋아서 웃는게 아니라 미안한 웃음인걸 이내 알 수 있었다.

"시험 잘 쳤나?"

"아니? 수학은 칠십이고 국어는 팔십오점인데..."

"학원 선생님이 뭐라고 하데?"

"다음에 더 열심히 해서 잘 치라고 했어. 학교 선생님은 목표 점수를 십점씩 올렸는데 엄마는 피자 대신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면 안돼?"

"그래도 잘 쳤다고 아이스크림 사 달라고 하나? 양심이 있어라. 가스나야~"

그러고 보면 애는 애다.

하는 짓 보고 기대를 했건만 기대에 지나지 않다니 멍멍한 상태로 하늘을 봤다.

 

아침부터 구름으로 닫힌 하늘은 비가 오다 그치다 몇 번을 반복하다 그대로 어두워졌다.

장사도 재미없고 그렇게 이쁜 우리 슬비가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더욱 재미없어 입은 그대로 다물어졌다.

사실 숨김없이 다 털어놓기란 부끄러운 성적이지만 슬비가 커서 무엇이 됐든 나중에 엄마가 한 고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메모해 본다.

 

하늘은 별도 없고 달도 없이 검은 칠을 한듯 하다.

집에 오니 벌렁 드러 누워서 곧바로 꿈속 한 가운데로 달리고 싶다.

마귀할멈이라도 좋다.

어서 잠자는 사과 하나 받아 아작아작 씹으며 달콤한 맛을 즐기며 잠자고 싶을 뿐이니까.

평화스러운 밤을 맛 보기 위해선 깊은 잠이 최고라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