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도깨비가 보는 세상

프로만이 살아 남는다

삼천포깨비 2007. 3. 12. 23:08
경기가 좋으네 어떻네 소리는 모두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시장통에 가보면 경기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알 수있다. 나는 답답하면 시장을 찾아간다. 여기에는 사람의 냄새가 있고 눈물도 웃음도 함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경희씨는 남편과 함께 10년 째 삼천포 중앙시장에서 2평짜리 가게 '도깨비분식'에서 떡볶이와 오뎅 순대등을 만들어 팔며 틈틈히 글을 써서 '시장에서 길을 묻다'(마리서사)를 펴냈다. 시장통에서 실제로 겪으며 살아온 그의 얘기는 소설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글을 읽으면서 계속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경희씨는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여군에 입대하여 일찌감치 인생의 극기력훈련(?)을 마쳤고 어쩌다가 삼천포로 빠져 시장 아줌마가 되었다.

시장통 안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느껴지고 이들의 하루는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일상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시장통에서 부대끼며 사랑하는 하루 일과는 특별 날 수밖에 없고 시장통이라는 무대에서 각양각색의 장사꾼들이 생존하는 색다른 삶이 한편의 연극처럼 펼쳐진다.

시장에 물건만 사러 와봤지 시장통에 사람이 사는지 조차 몰랐던 그는 이일 저일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중앙시장에 있는 도깨비분식에 정착했다.

-하루종일 퉁퉁 불어터진 오뎅만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김밥은 말라 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이지 팔지 못하면 그걸 집으로 가져와 저녁 대신 때우게 되는데요, 눈물젖은 빵보다 더 맛이 없는 거 있지요. 눈물은 아무리 나와도 눈 딱 감고 김밥을 먹을 수가 있는데 턱없이 콧물까지 줄줄 가세를 하면 도무지 김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입안에는 김밥이 가득이지 코는 콧물이 막아버렸지 이쯤되면 생명의 위기마저 느낍니다. 숨쉬는 게 우선이니까요. 목숨은 붙들어 놔야 김밥을 먹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닙니까. 이거야 말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팔다 남은 김밥을 먹는 김밥장사의 비애입니다.-

장사가 잘 된 날은 잠도 꿀맛이지만 장사가 안 된 날은 죽을 맛이라는 유경희 씨의 '시장에서 길을 묻다'를 읽으면서 우리 마음의 깊은 구석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대부분 생각없이 먹는게 남는 것이라고 음식장사에 뛰어 들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다만 오뎅국물만 공짜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된다. 2평에서 장사하건 200평에서 하건 경영은 어디까지 경영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는 이미 도사위에 산신령이다.
 
기사 입력시간 : 2005-04-21 20:09:29
대구일보 이상헌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