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슬비의 미션.

삼천포깨비 2008. 6. 6. 19:52

 

슬비때문에 또 웃기게 생겼다.

장난도 곧잘 치지만 놀리는건 여전하다.

날 엄마 취급을 하는건지 친구 취급하는건지 저으기 놀라기도 한다.

오늘은 엄마가 기분 안 좋아 보였는지 차 키를 들고 먼저 쪼르르 달려 가더니 조수석의 문을 열고 기다렸다.

"어서 오시오. 냉큼 오시오~"

다른 행동은 절대 용납이 안 된다는 듯 차 문의 손잡이를 잡고는 얼른 타기를 기다린다.

 

원래 나는 조수석에 앉기 보다 뒷자석이 편하다.

싫건 좋건 뒷자석에 앉는데 대해 잘 못 앉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오랜전부터 늘 그래 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비는 어쩌다가는 빼고 꼭 아빠가 운전하는 옆에 내가 앉는게 당연하다는것이다.

 

차 문을 닫고는 슬비는 뒷자석에 앉고 차 키는 가게 문 잠그고 뒤따라 오는 아빠 손에 건넸다.

"엄마. 바나나가 영어로 먼지 아나?"

"버네너"

"아 맞다."

"그럼 옥수수는 머야?"

"콘"

"아니다. 옥~수~수우~"

"엄마. 옥수수는 머라꼬?"

"욕~수~수우~"

"아이고. 엄마. 바보같다. 아빠. 엄마가 옥수수를 영어로 옥~수~수우~라고 안카나."

"니 엄마 가꼬 놀래?"

"알았다. 알았다. 이제 안카께."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하고 차는 어둠속을 뚫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엄마~ 미션 하나 낼테니까 성공하면 천원 준다."

슬비는 손에 천원짜리를 흔들면서 이왕이면 한번 덤벼보라는 듯 의기양양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돈 집어 너라."
"엄마~ 아빠한테 '사랑해~'하고 한번만 해봐."

"천원 안 받고 안 할란다."

"그럼 이천원."

"돈도 �다. 니가 하고 니 가지라."

"엄마. 해 봐라. 내가 이천원하고 팔다리 주물러준다."

"치아라. 집 다왔다."

"오늘 미션 실패로 끄읏~"

두번째지 아마? ㅎㅎㅎ

 

사랑한다는 말...

지금까지 슬이아빠한테 해 보지도 않았지만 들어 본 역사도 없다.

그걸 어느날 갑자기 딸내미 강요에 의해 아니 미션이라는 함정을 만들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엔 피차간에 고문(?)일 수 있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는게 더 웃긴다.

 

차에서 내리자 슬비는 아빠 뒤를 �는다.

"아빠! 아빠가 한번 미션에 도전 해 볼래? 응? 엉?"

아빠는 대답도 안하고 계단을 오른다.

슬비의 미션은 우리에겐 좀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