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빗줄기는 마치 회색 융 두루마기를 발등까지 걸친 듯 했다. 이 빗속을 뚫고 삼천포창선 연육교를 지나 냉천마을을 지나 바다야 놀자 팬션이라는 곳에 1박 2일 묵기로 했다. 향기네와 우리가족이 함께 하기로 했지만 너무 비가 심하게 오는 바람에 어린 향기와 로은이네는 아무리 짧은 거리라지만 오지 못했다.
열흘 전쯤 예약을 했고 아침부터 서둘러 중앙시장에서 장어와 삼겹살을 준비하고 나머지 생필품은 홈플러스에 가서 구입했다. 변변찮았던 아침식사로 일찍 배가 고파왔고 슬비가 많이 힘들어했다. 눈치 못 챈 향기아빠는 찻집에 갈래? 밥 먹을래? 한다. 슬비가 얼른 밥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어느 식당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지족 멸치가 유명하니까 멸치회랑 쌈밥을 먹자고 했다.
미리 남해에서 유명하다는 멸치쌈밥집을 알아뒀는지 곧장 지족다리를 건너고 식당을 갔지만 내부수리중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별안간 다른 세상에 들어 선 기분이다. 군데군데 비 뿌린 흔적은 있지만 활동하기엔 적당하였다. 비가 무더기로 퍼붓던 삼천포와는 많이 달랐다. 고즈녁한 바다풍경에 내 눈빛이 미끄러진다. 땅과 하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먼 거리겠지만 어쩜 저기 바다를 지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길에 멸치쌈밥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보고 들어 가서 점심 해결 하고 바다야 놀자 팬션으로 짐을 풀었다. 간간이 빗줄기가 바람에 흩어지다가 사라지다가 빗줄기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제곱에 제곱을 곱하듯 위협적으로 내리기도 하는 창 밖을 바라 보았다. 뒤로는 푸른 풀잎이랑 논에 벼들이 소담스럽고 앞으로는 바다를 가리고 있는 컴컴한 구름이 담모양으로 둘러쳤다. 이렇게 뜻하지 아니한 비를 맞으며 팬션에서의 1박이 시작되었다.
오후가 되면서 비는 더 거세게 퍼붓는다. 향기아빠는 무료하게 티비만 쳐다 보는 슬이와 슬비를 위해 고스톱을 치다가 저녁 준비하면서 슬이아빠 퇴근을 기다렸다. 떡집을 하는 부녀회장언니한테 전화를 했더니 그 무서운 비를 뚫고 남편하고 같이 소주 맥주 삼겹살까지 사 들고 위문공연을 와 주셨다. 마침 슬이아빠도 퇴근하여 도착했다. 밤새 마실 준비가 되었다고 허리끈 풀면서 술잔이 가난하지 않게 쉼없이 채우며 마셨다. 아니나 다를까 열시가 넘어서 밥을 쪄 달라는 주문에 언니는 하지 말자고 했고 남편은 두되라도 거절하지 못할 손님이라며 대리기사를 불러 쌀을 담궈 놓기 위해 삼천포로 떠났다.
향기아빠는 이미 잠 들었다. 반 술이 된 슬이아빠가 문제다. 밤 새워 같이 마시자던 향기아빠 다시 깨울 수 없어 혼자 처량하게 떨어지는 비 쳐다 보다가 방으로 들어 가 버린다. 슬이 슬비도 티비 켜 둔 채로 잠이 들었다. 나는 가져 온 책 들추기하려다 말았다. 시끄러운 빗소리와 함께 온갖 잡생각들과 투쟁을 할 준비를 하며 편하게 누웠다. 아이들 틈에서도 외롭고 적막함을 느낀다는 것은 왜일까....
새로운 아침이 되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창 밖을 내다 보기다. 빗기가 말끔히 가시었다. 벌써 여럿이 바지락을 캐는 모습도 보이고 산책을 나오고 지나다 차를 끌고 와서 바다향기 맡는듯하다. 신나게 비 뿌린 뒤에 일종의 여름향기가 내는 시원한 기분이 아닐까 싶다.
아침식사는 라면에 김치뿐이다. 라면으로 아침 때운 향기아빠는 모친 일 도우러 먼저 집으로 갔다. 슬이와 슬비와 같이 바지락 캐러 완전무장했다.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호미를 쥐고 바구니를 들었다. 얻어지면 즐거움이 따른다고 했겠다. 무료체험이라고 했지만 욕심없이 캐는 재미로 작은 소쿠리에 어느정도 담았고 곧바로 해감시켜서 냄비에 넣고 소금 간 하여 삶았다. 알이 굵지는 않았지만 싱싱하고 맛도 있었다. 이것으로 하여 1박 2일 팬션에서의 하루 마감하였다. 근심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고 즐거운 시간 만들어 주고 같이 해 준 이 있어 암만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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