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용접을 배우고 수료증 수여식

삼천포깨비 2012. 6. 21. 22:33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설명이 필요하겠다.

자격증 취득이 아니다. 자격증 취득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60시간을 채우지 못했지만 20일자로 교육기간이 끝나면서 수료증 수여식이 있었다. 하필 택시 파업이라며 눈 씻고 찾아 봐도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 맞춘다고 잰 걸음으로 걸었다. 가는길에 낮에 우산을 두고 온 식당까지 들려야 했으므로 오분은 지체 된 듯 하다.

 

학교 후문 앞에서 다시 정선생님의 독촉 전화가 온다. 입구라고 전화 끊을 때 선생님 모습이 보이고 웃음으로 반겨 주신다. 정확히 삼분 정도 늦었다. 교장선샌님하고 동시에 입장이었다. 무안했지만 얼른 자리 찾아 앉고 수료식이 시작되고 교장선샌님의 간단히 인사 말씀과 수료증 전달로 수료식은 끝났다.

 

이리하여 나의 용접수업은 다양한 경험중에 가장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여차하면 조선소에라도 뛰어 들 생각까지 가져 보기도 했다. 단순히 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혼자 서러워 눈물 자아내기도 했다. 아마도 청춘시절이라면 왜 이다지도 인생살이가 공평치 않냐고 투덜대면서 적극적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러기엔 적잖은 나이다. 용접한다고 내 인생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더욱 망설였다.

 

석달을 쉬는 마음으로 일 하면서 마치면 용접 배웠다. 그러다 하루는 뜨거운 맛도 봤다. 너무 뜨거워 땅바닥을 뒹굴만큼 뜨거워 울어도 시원치 않을 만큼 뜨거워 칼에 찔린 만큼... 그만큼이나 뜨거웠다. 그 날 따라 용접봉이 자꾸 달라 붙었다. 아마 전압이 낮거나 모재가 열을 받으면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나사를 풀어서 모재를 들어다 물속에 집어 넣어 식혀야 하는데 무겁기도 하거니와 귀찮아 그냥 용접봉을 모재에 갖다 대니 피복만 타 버리고 불이 꺼지길래 계속 대고 있었더니 용접봉이 녹으면서 쥐똥만한 불덩이가 뚝하고 신발에 떨어지더니 발가락이 뜨끈하였다. 앗. 뜨거뜨거뜨거뜨거~~~발로 땅을 치면서 불똥을 치우려 했다. 이미 발가락으로 파고 들었는데 뜨거운 맛이 이런거였다는 건 정말 맛 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히 연구생 성실이가 약을 들고 왔고 대일밴드로 싸매어서 응급처지가 되었다. 지금은 상처가 아물고 딱지만 떼면 새살 돋을 것으로 이상이 없다. 발등이었다면 사마귀 뜯어 낸 자국처럼 흉했을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신발에 난 구멍을 증거로 남기기로 했다.

 

하루라도 날 잡아 용접 배우는 동안의 이야기를 샅샅이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 기억의 한계는 얼마나 오래 가지 못하는지 오늘 잃어버리고 온 우산으로 증명되기에 몇번인가 생각만 거듭하다 접어버렸다. 수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 오는 길에 무언가 허전하였다. 이미 학교와 집 사이엔 반쯤은 걸어 온 터였기에 돌아가기엔 조금 먼 거리였다. 낮에 와이에서 점심 내기로 하여 식당에 가려고 차를 타려던 순간에 우산이 생각났다. 와이 사무실 이층에서 삼층으로 오르내리며 찾은 우산이다. 식당에서 밥 먹고 베네 카페에서 커피 마실 때 식당에 우산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오후에 마이스터고에 가면서 다시 찾기로 하고 그냥 집에 올라 갔던 것이다. 마이스터고에 가면서 우산 찾기로 한 식당이 한참 지났지만 다시 올라와 기어이 우산을 찾아서 수료식 참석하여 마치고 집에 오는 동안 손에는 우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 일을 어쩐다...기억이라는 것이 바다 한 가운데서 표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구생 한 친구에게 챙겨 놓으라고 카톡으로 부탁해 놓았다. 이제 까맣게 잊으면 정말 잃어버린 우산이 되고 말겠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없다. 그리하여 용접을 배웠고 수료증을 탔다는 기억의 실마리로 사진으로 증명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