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반가운 손님

삼천포깨비 2007. 1. 8. 22:52

시장통에서 십년을 보내고 손가락 하나를 더 꼽는다.

그 당시 근심이나 걱정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얼굴만 큰 반란이 일어난 듯  변해 버렸다.

몸은 옛날 같지 않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정신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 슬이 슬비가 커 가면서 책임 또한 같이 커지는것이다.

 

 

추운 날씨때문인지 어느때 보다 더 일찍 파장한 시장통이다.

우리도 일찍 마치자며 슬이아빠가 자리에 일어나 치우려고 했다.

난 그래도 들은 척 만 척하고 티비를 보았다.

마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듯 고개를 뻣뻣이 쳐 들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연속극을 처음부터 보지 말았어야 하는데 한번 보면 계속 보게 되고 그 속에 빠지면 가게를 들고 가도 난 모른다. ㅎ

 

연속극이 끝나고 옆을 돌아 보니 밖은 깜깜했다.

아홉시까지 동무해주던 진주할매도 일치감치 치워 버렸고 속옷집 내외도 가게 문 닫고 집에 올라가 식사할거라며 인사하고 갔다.

건너편 족발집에 밝은 불빛과 골목의 어둠은 바람이 불어도 섞이지 않고 완전 분리되어 고정시켜 놓은것 같아 보였다.

아마 건너편에서도 이쪽을 보면 같은 현상이겠지만...

 

멍청이 앉아 있을 수 없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했다.

그 지나가는 사람이 우리 가게 앞에서 멈춰 주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더 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눈에 뜨이지 않고 얼빠진 채 어둠속을 살피다 티비를 보다 슬이아빠 눈치 살폈다.

아까 마치자고 할 때 두 말없이 설쳤으면 지금쯤 집에 가 있었을걸...하는 후회도 해 봤다.

다시 밖을 본다.

거무죽죽한 건물이 자취를 감추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줌마~! 족발 주세요~"

어린 꼬맹이가 맨발에 슬리퍼 신고 한 손에 오천원짜리 한 장을 들고 흔들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깊이 잠겼는지 금새 잊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야채부터 챙기고 슬이아빠 족발 써는데 옆에 섰다.

슬이아빠는 벌써 족발을 썰고 있었고 꼬맹이가 추워 보였는지 난롯가에 서 있으라고 했는데 꼬맹이는 괜찮다며 마빡이 춤추듯 두손을 잡고는 폴짝 폴짝 뛰었다.

슬이아빠는 안 되겠는지 꼬맹이 손에 오뎅 하나를 쥐어 주었다.

춥다며 국물까지 한 컵 떠 주면서 마시라고 눈 짓하며 족발을 포장하였다.

꼬맹이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더니 이내 고맙다며 넙죽 인사하고 국물에 오뎅 하나를 간장에 찌어 맛있게 냠냠하고는 족발 봉지를 들고 뛰었다.

 

옷 입은거며 행동하는게 우리 가게에 자주 온 것 같은데 어느집 아들내민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는 아이가?"

슬이아빠한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생전 인심 한 번 쓰지 않던 슬이아빠가 선뜻 오뎅을 집어 주는거며 국물까지 손수 떠서 주는거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니... 단군의 자손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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