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장바닥에 다시 서다.

삼천포깨비 2008. 3. 30. 01:50

시장통에서 벗어 난지 석달이다.

밖을 나와도 그럴싸 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원하는건 약간은 편하고 그러면서 장사가 좀 더 잘 되는거였다.

완전히 틀어졌고 이대로는 참으로 터무니 없는 짓으로 후회 막급하다 할까봐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구하여야 했다.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던 슬이아빠가 '장날에 나가서 팔아 보지 않겠냐'는 물음에 순간 펄쩍 뛰었다.

'아직까지는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니 가게 안에서 신경을 더 쓰면 나아 질거라'고 어줍잖은 핑계을 댔다.

그렇게 지난 장날을 넘겼는데 오일마다 장이 서니 되든 안 되든 해 보고 나서 핑계가 통 할것 같았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해 보겠다'고 했으니 오늘은 피할 도리 없이 장바닥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간 슬이아빠는 '족발 준비가 다 되었다'며 '어서 가게로 와서 팔러 나가'라며 재촉하는 전화가 왔다.

하기 싫다는 소리도 못하고 죽은 소 끌려 가는 기분이었지만 내색도 안 했다.

처음엔 씩씩하게 두 팔 걷어 부쳤다.

왼쪽엔 야쿠르트 아줌마가 있고 테이프 파는 아저씨가 있다.

그 옆엔 붕어빵 할머니 옆에 볼 틈도 없이 바쁘게 붕어빵 구워냈다.

오른쪽엔 과일장사를 하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쌓아놓으면 쌓일수록 잘 팔린다 하더니 내 모양을 쳐다보니 너무 처량했다.

가게 안에 있는 탁자를 끌고 나와 족발을 오천원짜리 포장한 것과 만원짜리 포장한 것 세개씩 놓여있다.곁다리로 야채와 소스장이 있지만 전혀 폼이 나지 않았다.

용감하게도 슬이아빠한테 족발을 더 가져 오게 하였고 시장통 장사 경험 살려서 소리를 지르니 하나씩 팔렸다.

가게에 앉아 있었으면 하나도 못 팔았을거인데 오천원짜리 하나가 팔려도 '이게 어디냐'며 신바람났다.

오~ 예스~!다.

 

누군가가 기적을 불러 주었을거란 예감을 한다.

십만원어치 주문하는 사람도 보내주었다.

손님한테보다 하느님(?)한테 더 감사했다. ㅎ

 

오후들어 한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꽤 오기 시작하였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덕분에 심심치 않았다며 자리를 접으며 족발 하나 사주었다.

테이프 아저씨도 비 때문에 장사를 잘라 버렸다며 족발로 소주 마시며 저녁을 때울거란다.

과일 아저씨는 벌써 족발이 뱃속에 들어가 앉았다.

 

다섯시 반이면 어차피 장사를 걷는데 조금씩 내리는 비는 인정하지 않았다.

비에 �기며 빠른 걸음을 하던 사람이 멈추고 다가 왔다.

'어찌된 영문이냐'며 매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내 마음을 알아 줄 것 같은 그 마음에 쏠렸던지 '열심히 살고 있는게 보기 좋다'는 말에 그만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원체 흔한 눈물이니 아무때나 연결되는가보다.

어떤 손님이든 누가 뭐라든 다음 장날이 기대된다.

비만 오지 마라.

 

이 시간 비는 꽤 오고 있다.

날씬한 비가 유혹하려는 듯한 소리로 잠을 ?았다.

모처럼 컴 앞에 앉아 있게 해서 잘 했다는 칭찬도 할 수 있지만 내일을 어떡하라고...

내 걱정은 염두에 두지 않고 고요한듯 고독한듯한 이 봄비가 대단하다.

정신없이 자면 업어 가도 모를 판에 바람에 휘몰아 감긴 갈대처럼 우뚝 서 밖을 본다.

날씬한 비가 적당한 간격을 둔것 같기도 하고 너무 밀접해 있는것 같기도 하다.

어느쪽으로 결정 지을 일도 아닌것을...

별 문제도 아닌것을...

내가 참 싱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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