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흥정

삼천포깨비 2009. 3. 26. 00:24

모처럼 중앙 시장에 들어섰다.

시장통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아무 말없이 느릿한 걸음으로 난전 물건들에 눈길을 두었다.

어쩌고 사는지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이 부담이 되었다.

-장사 잘 되나?

-그저 그래요.

콩나물 다듬던 손은 나름 열중하면서 눈웃음과 함께 말을 거는 할머니의 반가운 몸짓이 슬슬 걸어 가는 걸음을 세웠다.

-콩나물 천원어치만요.

-내가 사라고 부른거 아닌데...

-아녀요. 안그래도 필요하거든요.

-그래. 고맙그로...

늘 그랬듯이 그릇에 담긴 콩나물 말고도 동이에서 한 웅쿰을 집어선 비닐 봉지에 담는다.

한 웅쿰 더...

 

가오리 무침을 먹고 싶다는 슬이아빠 말에 판장으로 갈까하다 가까운 중앙시장으로 온 것이다.

2월달 일한 임금이 통장으로 들어 왔다.

돈이 많이 들어 있지 않는 빈약한 지갑이지만 두둑한 느낌이다.

먹고 싶은거 있다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

거기다 수없이 뛰고 춤추며 날아 오를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돈 들어 오는 날짜 기다려지는 묘한 기분이 어쩌면 로또 추첨하는 날 기다리는 그런거라고 할까.

더 기분 좋게 했던건 1월달 임금을 하마나 하마나 하다가 결국 반밖에 받지 못한 상태라 약간 쪼들리었던 중이었다.

 

조금횟집에도 중앙횟집에도 똑순아지매집에도 가오리가 없다.

오늘따라 헛탕이면 어쩐다...했더니 마침 가오리 껍데기 벗겨 놓고 두마리 두마리씩 쟁반에 올려져 있는게 눈에 띈다.

-얼마...?

나머지 말꼬리는 그냥 잘라 버렸다.

옆에 고기장사하고 열을 올리면서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컷다.

-가올아! 가오리 얼마냐고 묻는다.

-만 오천원 주라. 두 마리 만원인데 떠리미라꼬.

-이 천원만 더 깍으면 안돼요?

-안돼! 두개에 만원에 가져 가든지.하나에 오천원에 가져 가든지.

-고마 조라. 칼 안 되고. 집에 가서 썰아 먹으라하고 고마 담아 줘삐라. 넘도 아이고만.

-안 할란다. 삼대 구년만에 사러 와서 내가 머 답답다고 팔끼고. 더 남은게 없어서 줄라했제.

손바닥 만한 가오리 두 마리만 사서 가자니 남은 두마리는 오천이렸다...

이건 너무 불공평한거 같다는 생각에 가오리 아줌마 얼굴 힐끔 쳐다 봤다.

가오리 아줌마는 흥분한 상태라 옆에서 거들었던 말들이 지금까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듯 다른데로 눈을 돌렸다.

-장사 잘 되제?

그 옆에 있던 홍합 까던 할머니가 묻는다.

-그냥요...

-하아. 요새 되는게 있나? 이놈의 세상 잘 되는게 이상치.

할머니는 무심히 남의 말 하듯이 하고는 깐 홍합 그릇을 들고는 다른 그릇에 덜어 놓는다.

-그거 얼마예요?

-안 사도 되는데... 오천원.

-삼천원어치만요.

-이거 더 얹어 줄테니까 다 부어 가라.

오천원짜리를 삼천원에 깍으려 한것도 아니고 삼천원어치를 덜어 달라고 했는데 덤태기 쓰듯이 오천원어치를 담아 버린다.

이럴 땐 시장통에서 십년 넘도록 같이 박혀 버린 인연의 말뚝을 쑥 뽑아 버리고 싶다.

대차게 안 하겠다는 말도 못하고 오천원을 건넸다.

받은 돈 머리에 대고 쓰윽 문지르곤 몸빼 속에 있는 주머니 꺼내어 집어 넣는다.

 

괜히 이천원 깍으려 했던게 미안해 가오리 아줌마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담아 주이소.

-이물없이 지내던 사이 너무 빡빡하게 하지 말고 고마 싸게 줘라.

-슬이네가 입도 딸삭 안 하구만. 와 옆에서 자꾸 그래쌌노?

가오리아줌마는 쓸데없이 신경 쓰는 갈치 아줌마의 염려는 찢어발겨 버리는듯한 소리로 말문을 막는다.

나는 깍는 걸 포기하고 만 오천원을 꺼냈다.

내 손에 든 돈을 보더니 가오리 아줌마는 돈 통에서 이천원을 꺼내 든다.

결국 가오리는 이천원 깎였다.

앙숙끼리 흥정을 했지만 누구때문에 깎였는지 아직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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