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스크랩] 대책이 없는 시장통...

삼천포깨비 2009. 5. 25. 10:33
유신상회 점포정리 딱지가 떨어지고 쭈욱 걸린 옷가지며 헹가들이 모두 치워졌다.
횟집이 들어 온다 아니다로 입소문만 무성했던 점포주인은 진주할머니로 낙찰 된 것 같다.
진주할머니는 유신상회앞에서 노점을 이십년가까이 했는데
횟집을 주게 되면 모두 쫒겨 나게 생겼다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게를 얻은걸로 들었다.
건물 주인은 다른 생각보다 함께 식구처럼 지낸 사이에 몰라라 할수 없었고
이왕이면 진주할머니가 얻겠다고 나서니 맘이 편했을것이다.
진주할머니한테는 가게가 문제가 아니었다.
목숨처럼 여기는 자리를 하루아침에 쫒겨날 판이니
누가 내도 낼 집세를 주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일이다.

설 안에 다 비워주기로 한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다.
설 전날부터 내려진 셔터는 설 쇠는 사흘동안이나 올려지지 않았다.
진주 할머니가 트럭에서 짐을 부리고 셔터를 올리고 나서야
이제 주인이 바뀌었다는걸 실감했다.
유신상회 할머니는 삼십구년만에 시장통을 떠났다.
가게안은 엉망이었다. 누더기처럼 빗물자국이며
페인트칠이 벗겨져 너덜 너덜한 벽이 옷들이 치워지자 그대로 드러났다.

가게를 얻은 진주할머니는 수리할 생각도 안했다.
그대로 야채박스며 팔다 남은 물건들을 넣었다 꺼냈다 하는 창고로 사용하였다.
번듯한 가게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사람마다 혀를 찼으나 어쩔 도리는 없었다.
이러다 시장이 저절로 없어질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건물주인이야 한푼이라도 더 받을려고 덤비는데
장사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하면 한푼이라도 깍을까 하는 생각도
쓸데 없는 짓이라는걸 빤히 아는것이다.

노점에서 장사하던 사람은 가게 얻어 장사 못하고
가게 얻어 장사하던 사람은 노점에서 장사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한 것은 내가 시장통에서 십년을 지내오면서 느낀것이다.
쎄가 빠지게 장사해서 누구 좋은 일 시키느냐는게 노점상의 입장이었다.
집세를 안 내는것만으로도 그게 어디냐는것이다.
그랬는데...
가게를 얻는 사람들이 장사가 안되니 노점상들을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떤이들은 좋게 좋게 타협하여서 공동으로 집세를 내기로 하고
노점상들은 노점상대로 편하게 앉을 수 있게도 되었다.

가게를 얻었어도 앞자리를 노점상한테 빼앗기고 말도 못하고
그대로 장사를 하다가 망해서 나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꼭 노점상 때문에 망한건 아니지만 가게주인이 장사가 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눈치 좀 보다가 자기 자리를 넓혀가곤 했다.
시장에 들어와서 장사한다 맘 먹었다면 대가 세어야 하고
빠릿 빠릿하게 머리도 잘 굴려야 밥은 먹고 살 정도는 된다.
맘 착하다고 복받겠거니 하면서 양보했다간 큰코 다친다는 것은 뻔할 뻔자다.
가게를 얻은 사람이 망하거나 말거나 앞에 앉은 노점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자기네가 늙어 죽을 때 까지는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는 걸
못 박아둔 상태로 절대로 꼼짝 안했다.

요즘에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화내기 잘하고 고함을 잘 지르던 할머니들이 많이 얌전해졌다는것이다.
이제 가게 얻은 사람들이 뻥뻥 나가 자빠지니 조금은 양심은 있는지
툭하면 시비조로 나오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어떻게 자리를 조금이라도 내 주라고 통사정하는 할머니도 있고
시청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놓는 할머니도 있었다.
오늘 아침엔 갈치할머니는 시장번영회 사무실에 뛰어갔단다.
“이등하라믄 섧을 할매다.”
“먼 소린데?”
“똑똑타 이 말이제...”

시장통은 벌써 마비상태에 빠져 들었다.
어제와 다르게 시장에 오는 사람들 발길이 전멸상태였다.
뱅뱅 옷가게도 문닫은지 여러달만에 뜨네기 장꾼이 와서 천원짜리 물건을 팔고 있다.
만두가게는 화장품아저씨가 계약은 한 상태인데 매상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목소리가 기운 빠져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을 그리 끌지 못했다.

“봐라~ 봐라~ 봐라~ 봐라~”
“입에서 냄새 안나는 칫솔 천원~”
“입에 냄새 나면 새해엔 복 절대 안줍니다. 칫솔 한개도 아니고 네게 천원~”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던 화장품 아저씨의 장사하는 모습이 더 이상 변화가 없었다.

점점 재미없어지는건 아저씨의 호주머니속인지도 모른다.
첨에는 밥집에서 꼬박 사서 먹었는데
노점상 할머니들처럼 스치로플그릇에 천원짜리 밥을 사가곤 했다.
때때로 재미나고 훌륭한 장사꾼이라고 생각했는데
입버릇처럼 되풀이되는 말투가 요란스럽기만 했지
이제 다 아는 얘기로 알았을 때 더 이상 귀기울여지지 않았다.
출처 : 새작들21 / 네 멋대로 해라~홍천정보과학고 동문들의 방
글쓴이 : 도깨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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