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비는 엄마가 가서 좋겠다....
동생이 새벽부터 분주히 서두르며 떠날 채비하는 언니보고 한다는 소리가 가지 말라는 소리보다 더 하다.
슬비는 슬비대로 머리가 훌렁 벗겨질것 같이 열 받게 만들었다.
엄마는 우리한테 관심도 엄나? 냉장고에 먹을것도 엄다. 엄마. 언니는 엄마한테 말 하지 말라고 하면서 늦게 들어와따. 엄마. 엄마. 엄마....
지금 나보고 어쩌라고. 엄마 삼천포가서 혼내 줄께. 가야 맛있는거 해 주던지 하지. 지금은 이모 아픈데 옆에서 자꾸 딴소리하면 신경쓰이고 스트레스받으면 안 낫는다. 엄마가 암 걸렸다면 어쩔거냐고. 건강한 우리가 조금만 참자.
그래도.....
슬비는 엄마한테 잔뜩 기대걸고 전화를 했는데 투정이라도 부리려는걸 묵살해야 전화를 빨리 끊을것이다.
지지난주 일욜 새벽에 출발하여 오늘 도착했다.
버스 타고 내려 오는 동안에도 슬비는 어디쯤인지 계속 궁금해했다.
삼천포 도착하여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고 장거리 보는 동안 슬비는 시장으로 쪼르르 달려 왔다.
뭐가 제일 먹고 싶은지 말 하라고 해도 다 필요 없다는걸 보면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즐거운 나의 집으로 왔고 슬비가 문 열어 주길 기다렸다.
엄마. 열쇠가 없다.
엉?
열쇠를 학교에 두고 왔나봐. 어떻게 해...
어떡하긴 가서 가꼬 와야지.
어쩔수없이 뒤돌아서 가는 뒷모습 잡고 싶을 정도로 처량하다.
열쇠를 경비실에 맡기라고 일렀거늘 자기가 직접 문을 열어 주겠다면서 천천히 오라고 하더니 정작 열쇠를 교실에 두고 올 줄이야.
달려라 하니... 아니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는 슈퍼맨처럼 슬비는 뛰었을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현관 앞에 선 채로 가을옷 입은 산을 바라다 보았다.
해만 지면 산 밑에 저수지 돌아 운동하던 길이 빤히 보인다.
그 사이에 벼는 꽁지머리처럼 묶여져 기다랗게 논바닥에 누었다.
벚나무 이파리의 찬란했던 초록빛은 한물간 여인네의 입술처럼 붉다 말았다.
샛노란 은행잎 외에는 아직 고운 색 보기 이른 무렵인가보다.
슬비가 왔다.
열쇠를 집어 넣으면서 입은 그냥 있지 않는다.
엄마. 선생님 만났거든. 어쩐 일이냐고 하는거야. 그래서 열쇠 찾으러 왔다고 하니까 웃더라.
ㅎㅎㅎ
나도 할 말 없이 웃고 말았다.
까만 비닐봉지에서 무엇이 나오던지 하나씩 꺼내면서 정리하고 가오리는 싱크대에 두고 꾸덕꾸덕 말린 갈치는 호박넣고 지지기로 했다.
가오리 껍데기 벗기는 일이 걱정이다.
슬이아빠 좋아서 사긴 했지만 아무리 벗겨 달라고 해도 한 마리 더 줄테니까 집에 가서 벗기라는것이다.
한 마리 더 준다는 말에 욕심이 나서 들고 오긴 했지만 적게 먹더라도 벗겨 달라고 할껄...후회스럽다.
일단은 뒤로 미루고 갈치조림 불에 올려 놓고 돌아서는 순간 슬이아빠 전화다.
언제 왔어?
금방.
오늘 야근이다.
... 알았어. 이따 봐.
뚝!
엄마. 아빠 엄마 없을 때도 야근 많이했다. 달력에 내가 다 적어 놨어.
잘했어.
아빠 야근이면 우리 밥 먼저 먹자.
그래.
냉장고에는 먹을게 없다더니 가면서 무치고 볶아 놓은 반찬들이 그대로 있다.
이건 반찬 아니고 머야? 머하고 밥 먹었노?
응. 그냥 이것 저것.... 엄마. 내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아빠가 통닭 한마리 시켜줬어. 딱 한 번만. 그리고 엄마. 나 성적 올랐거든. 성적표 보여주까? 여기봐. 170명중에 70등...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전교에서 1등인데 2.30등까지 올리래. 엄마. 그리고 슬기가 우리반에 다시 전학왔어. 초등학교때 친했잖아. 부산으로 전학갔다가 다시 전학 왔는데 우리 반이야. 너무 신기해.
이제 친하면 되겠네...
안 친해. 다른 친구하고 놀고. 처음에는 공부시간에 졸지도 않더니 이제는 아예 엎드려서 자드라.
니는? 공부시간에 안 자나? 언니는 잘 잔다고 하던데?
공부시간에 왜 자? 공부해야지...
안 졸고 공부하는 년이 70등이야?
학원 안 다니고 이만하면 잘 하는거지. 선생님들이 학원에서 다 배웠지? 하면서 넘어갈 때도 있어.
어떤 선생이야???
... 엄마 밥!
그래 묵자.
못 먹을거 같으면 버릴까 하고 꺼내 놓은 반찬이 건드리지 않았던 탓인지 맛은 가지 않아서 상에 얹고 갈치 조림으로 저녁상은 성찬이 되었다.
아. 너무 맛있다. 너무 맛나다. 엄마. 쩝쩝쩝... 짭짭짭... 엄마 오니까 너무 좋아. 이모 이제 다 나았나?
아니. 이제 시작인데. 엄마 또 가야하면 슬비가 살림 할래?
싫어. 아빠가 엄마 안 보낼껄?
그나저나 이모 어떡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슬비가 전화 해 볼래?
싫어.
하는 수 없이 동생한테 직접 통화버튼 눌렀다.
괜찮나? 난 밥 먹었는데 니는?
언니~ 언제 와....?
내가 집에 온지 몇 시간 됐다구 이그....
언니~ 빨리 와...
몰라. 일단 끊어.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 . .
그간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면 길다.
천천히 시간 내어 꺼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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