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절반쯤의 행복한 상태...

삼천포깨비 2009. 11. 3. 11:19

며칠 째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잊은 채 아무것도 못쓰고 말았다.

시간만 되면 이어야 할 이야기들을 마치 밥 먹다 말고 일어섰다가 다시 밥 먹으려 할 때 그 맛이 아니었던 것 처럼 흥미라고 할까... 아무튼 의욕이 없어졌다.

청소만 끝나면 종일 컴 앞에 앉아서 하겠거니 했다가 뭐든 끝나는 일이 없다.

돌아서면 해야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일을 쫒고 있는거 같았다.

 

이틀을 슬비가 열이 많았다.

아침에도 목은 아프다면서 기어이 학교를 갔다.

처음엔 온 몸이 뜨거워서 신죵플루라도 걸렸을까봐 안절부절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신종플루 증상은 아니었다.

몸살기라고 판단하고 어린 애가 무슨 몸살이냐고 다그쳤다.

엄마가 집에 오는 날 학교에서 체력장을 했다고 한다.

운동장 여섯바퀴를 돌았고 자기는 아주 열심히 뛰는 바람에 삼등이나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온다고 들뜬 기분으로 학교에서 마트까지 마중나왔고 집에 와서 열쇠 때문에 다시 학교까지 달음박질로 다녀왔으니 튼튼한 슬비한테도 충격은 심했더 모양이다.

공부는 칠십등이라며? 달리기는 꼴찌해도 되는데 머할라꼬 열심히 뛰냐?

엄마는... 내 뒤에 백명이나 있는데.

그래그래. 잘 했다. 칠십등아.

난 일등짜리하고 친구하여서 이번에 십등씩 땡기면 일이십등은 자신있다.

정말? 일등은 안 바래. 공부 너무 잘해도 골치 아프거든? 이삼십등만 해라.

알았어. 엄마.

 

슬비가 걱정이었는데 갑작스레 슬이가 머리 깨질듯 아프다며 징징대었다.

며칠 전 부터라니 긴장이 아니 될 수 없다.

머리에 손을 얹어 보니 약간의 열과 머리밑이 축축한 느낌이다.

약은 먹었고 병원은 보류다.

온 몸이 뜨끈뜨끈하던 슬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학교를 갔는데 이 녀석은 두고 볼 일이다.

 

슬이아빠는 오늘부터 광양으로 일 다니게 되었다.

회사에서 숙소를 얻어 주었다고 하지만 한 시간 거리라서 출퇴근 할거라고 했다.

야근에 늦으면 숙소에서 잘 수있으니 여벌의 작업복과 속옷은 챙겨 놓으라는 말에 박스에 담아 트렁크에 실었다.

옮기면서 시급도 꽤 올랐다.

모가지 시킨 사장이 원망이었지만 그 사장 때문에 옮긴 직장에서 다시 옮기게 되었다.

원인은 임금을 받기 힘들다는 소문이 돌아 몸을 뺀다는 것이다.

아직 1월분과 8월분은 못 받은 상태다.

일요일 슬이아빠는 교회까지 태워 주었고 예배를 마쳤다고 전화를 하니 다시 교회로 왔다.

바로 집에 가지 않고 노산공원 밑으로 해서 부둣가로 방향을 틀었다.

기분 나면 이런 식으로 인심을 쓰곤 하던 슬이아빠다.

해안도로 접하면서 사장이 산다는 아파트가 보인다.

슬이아빠. 사장 저기 아파트 산다며? 차 어떤 차야? 차 번호는...

...

아무 대답이 없다.

여기 집 앞에서 기다리면 사장 만날 수 있잖아. 맨날 전화해도 안 받고. 받으면 이리 빼고 저리 빼고. 날짜 기다렸다 다시 전화허면 안 받고. 문자도 얼마나 날렸다구.

줄 사람이 너무 많아...

그래두. 다른 사람들은 노동부에 고발하고 난리치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꼬아 받는게 좋은게 좋은거잖아. 나도 사장보고 서로 삼천포 살면서 얼굴 붉히지 말자고 했거늘.

전화 받기는 받드나? 회사서도 옆에 있으니까 마주쳤는데 며칠만 기다려 보라는 말은 하대.

나한테 그러드라. 다른 사람같으면 전화 안 했을거라면서 사정 좀 봐 달라고. 추석에 지 때문에 십원 없이 보냈으면 됐지... 생각을 또 해도 분통이 터진다.

나중에 전화 한 번 더 해봐라. 그냥 가자.

끝내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사장이 어디쯤에 사는지 모르는 아파트 앞에서 무섭게 노려만 보고 와버렸다.

 

다행히 일자리는 쉽게 구했다.

나이는 다섯이나 아래이지만 관리자 입장에서 슬이아빠를 챙겨 주었다.

당사자야 출 퇴근 길이 멀어 힘들것이다.

여러가지로 고려해 볼 때 임금 문제나 일에도 대우를 받을만큼 받는거 같았다.

나도 다섯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 빼고는 조금도 나빠할 이유는 없다.

주말 부부가 되는가보다 했더니 슬이아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한다.ㅎ

 

아이들이 심하게 아프지 아닌것에 감사한다.

슬이아빠 더 좋은 일자리 얻게 되어 감사한다.

많이 행복한게 아니라 약간만 행복한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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