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쫌 내린 티가 난다.
멋대로 자란 풀더미 위로 물이 핥고 지나간다.
주말농장 여름날 축제 분위기 될 법한 개울이 제 모습 갖춘것이다.
열무가 많이 자라서 솎아 줘야 한다는 농장주인 전화에도 들릴 틈이 없었다.
슬이아빠가 쉬는 날 입이 심심한지 부둣가에 무엇이 났는지 가 보자며 차를 몰았다.
싱싱한 호래기 샀다.
집에 가는 동안 주말농장에 잠시 들리면 안 되겠냐며 말을 꺼냈다.
말없이 차를 종천마을로 향한다.
농장주인은 엊그제 통화에 땅끝마을에 간다고 했다.
주인 없는 하우스에서 상추 뜯어 챙겼다.
열무는 새의 가슴털 처럼 소복소복 자라 나 있다.
어제의 비가 군데군데 검은 반점처럼 물웅덩이 만들어졌다.
질퍽하고 똥색깔의 진흙이 신발 위 까지 덮으며 반질반질거렸다.
슬이아빠 차 앞에서 꼼짝 않고 바라 보고 있다.
가디건 벗어 허리에 묶고 열무를 잡고 차례로 뽑았다.
적당히 솎아 낸다는 것이 급한 마음이었는지 중간중간 허전한 공간이 생겼다.
양이 제법 되었다.
한번에 가져 가기엔 너무 많아서 반을 덜어 가슴에 안았다.
초칠을 한 듯한 미끄러운 길을 두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트렁크 앞에 갖다 놓았다.
마른 흙이 아니라 준비없이 온 상태라 차에 싣기엔 슬이아빠 표정이 해골로 변할 것 같았다.
개울가로 다시 들고 갔다.
양말 벗고 바지 걷고 열무를 개울 속에 집어 넣었다.
어릴 적에도 이렇게 했었다.
집에 우물이 있어도 근처에 개울로 가서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열무도 씻고 운동화 마를 때까지 공깃돌도 줍고 책갈피 될 만한 잎사귀나 꽃잎을 뜯어 호주머니에 집어 넣기도 했다.
이런 감상에 젖어 있기엔 날씨도 심상치 않고 슬이아빠 모습 보니 저절로 사라졌다.
말끔히 다듬은 열무 가져다 손질하면서 약간은 끓는 물에 넣어 데치고 나머진 소금을 뿌렸다.
심심하게 잘박한 열무김치 담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