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그래. 웃자.

삼천포깨비 2005. 11. 22. 01:00

 

 

 

하늘이 푸르다고 낙엽이 바람에 뒹군다고 울적해지던 감정 하나 없이 가을을 보냈다.

솔직히 도둑맞은 기분이다.

무엇에 그리 바뻐 가을을 누리지 못했나 싶으다.

어제도 모처럼 하루 쉬게 되었는데도 산으로 갈까나 바다로 갈까나 궁리만 하다가 문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슬이아빠는 하동으로 시제 모시러 갔고 나는 빨래 하기로 맘 먹었다.

이불 베게 호청을 뜯어서 세탁기를 세번씩이나 돌리고 한 숨 늘어지게 자고 나니 깜깜한 밤중이었고, 아이들 밥 챙겨주는 바람에 같이 한 술 뜬게 저녁밥이다.

그리고 또 잤다.

머리통이 지끈거리도록 잤는데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학교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이게 몸살이지 하면서도 장사하러 갈 시간이 되니 멀쩡하게 일어났다.

 

어제와 다르게 옥색빛 하늘 바라다보며 시장통에 들어섰다.

하룻동안 잊혀졌던 자리를 하나 하나 기억해 내면서 일을 시작했다.

싸움박질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시장통 사람들의 말투는 여전하다.

바람 한점 스밀 틈 없이 완전 무장한 옷 입은 폼새도 여전하다.

잠깐 얼굴 비추이고 종일 사라진 쏘대이모 자리도 그렇고, 장사 안되어서 죽겠다는 소리도 그렇고, 그렇고 그런 풍경들을 별 생각도 없이 물끄러미 쳐다 보는 나 역시 여전하다.

 

어느새 석탄같은 어둠으로 둘러 칠 무렵 갈 사람들은 가고 없다.

남아서 불이 켜 있는 집은 치킨족발집 하고 압구정동족발집하고 야채장사 진주할매랑 브라자가게와 우리가게 뿐이다.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를 안고 지나다 족발을 살까 말까 하다가 그냥 갔다.

조금 있으니 볼 일을 다 보고 가는 중인지 다시 가게 앞에서 멈칫거렸다.

족발 삼천원짜리 달라고 한다.

삼천원짜리는 없고 젤 작은게 오천원이라고 말 하고는 눈치를 살폈다.

애기아빠 손에는 천원짜리 다섯개를 세어서 들고 있는데 애기엄마는 굳이 삼천원짜리를 또 들먹인다.

겨우 오천원짜리 족발 하나 팔았다.

이럴 때 마다 장사 때려 치우고 싶은 유혹이 더 커진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 벨이 울리고 슬이아빠는 반가운 기색으로 수화기를 들었는데 얼굴이 굳어진다.

느낌이 이상해서 귀 기울이니 조금 전에 사간 족발을 반품한다는것 같았다.

아파트 홋수를 알려주는걸 보니 찾아가라는 모양이다.

슬이아빠는 두 말 않고 전화를 끊고 차를 탔는데 시동이 걸리지않는다고 되돌아 왔다.

좀 전에 배달 갔다가 차에 불을 켜 두어서 방전 된것이라고 한다.

아파트가 마침 동생네 마주 보고 있는 데 라서 얼른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집에 가서 오천원을 주고 족발을 받아 가게에 가져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막내 제부가 대신 심부름을 해 주었다.

하필 맥주 한 잔 하는 중이어서 차를 운전 할 형편이 못되어 택시를 타고 왔다.

반품한 족발 오천원에다 왔다 갔다 택시비 오천원을 보태서 주고나니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비계가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반품한다는 내용을 들었지만 억지로 권한 내 잘못이 크다.

 

"경희야~~"

옆에 붙어서 졸졸 따라 다니는 슬비가 뚱단지같이 내 이름을 부른다.

"엄마~ 왜 불러? 하면서 대답해라."

"야가~ 미칫나?"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 반은 웃음으로 반은 인상쓰면서 슬비를 째려봤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슬비는 모른 척하고는 저 하고 싶은 말 계속 떠들었다.

"경희야~ 하면 왜 불러?하고 대답해. 그러면 너거 집에 불 났다 불끄러 가자. 하는기다. 엄마~ 인상 좀 펴라. 이마에 또 주름 진다. 에구 에구~~"

내가 아무래도 저 애 늙은이 때문에 웃을 일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