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네 가게가 오래도록 닫혔다.
하루는 손자 돌잔치에 닫고, 하루는 피곤해서 닫고, 하루는 팔 물건이 마땅찮아서 닫았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는 아저씨 몸이 좋지 않아 입원했는데 병이 깊어 수술까지 받고 요양중이라 시장에 못나온단다.
한 낯선 남자가 봉이네 가게 빈터에 경계하는 눈길을 보내며 자리잡고 앉아있다.
그릇가게 아줌마가 앞에서 얼쩡거리니 하루만 자리를 빌릴 수 없느냐며 말을 건낸다.
봉이네가 안 나오니 미영이네한테 물어보라며 가르켜 줬다.
한참을 기다려 미영이네를 만난 아저씨는 다시 한번 자리를 빌리자는 말을 한다.
미영이네는 자기 자리는 아니지만 어차피 비어 있는 자리니 자리를 펴도 된다고 했다.
낯선 남자는 신발을 팔러 온 사람이었다.
백화점 납품하는 신발인데 무조건 만원이라면서 금새 신발박스를 가게 앞에 쌓았고,
앞쪽으로 박스에서 꺼낸 신발을 가지런히 진열했다.
언제 모였는지 신발파는 곳엔 사람들이 북새통이다.
신발을 신어보는 사람 자기 칫수에 맞는 신발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시장통에서 신발가게 하는 사람들 복장 터질 일이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몰라도 코스모스신발가게에서도 나와 목을 빼고 쳐다 보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이내 가게로 들어간다.
무쏘신발가게에 번영회비 받으러 간 총무가 회비달라며 영수증을 내밀자 밖에는 저 난리고 마수도 못했는데 회비는 무슨 회비냐는 타박에 그냥 나왔다고 한다.
시장통 신발가게 주인들 생각하니 만원짜리 신발파는 곳에 얼씬도 못하고 말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네모난 박스가 담긴 모양으로 봐서 만원짜리 신발을 사가는것을 얼핏 봐서도 알것 같다.
한쪽에서는 신났고 다른 한쪽에는 냉냉한 기운이 감도는걸 느꼈다.
그런데 누군가 후다닥 뛰어 나오더니 신발파는 아저씨 앞에서 소리를 쳤다.
"아저씨~! 낼로 신발 한컬레 주이소."
"네?"
"내가 하나 사니까 만수로 사가네. 오는사람 가는사람 신발 싸다고 에우니까 전수다 신발 봉다리 들고 간다."
"아이고~~ 감사 합니다~~"
신발파는 아저씨는 넙죽넙죽 절을 하면서 싱글벙글 웃어 넘긴다.
어디서 듣고 있었는지 미영이네가 나서며 한마디한다.
"야~야~ 그런 소리 하지마라. 시장통 신발장사한테 마자 죽었다. 신발장사 들으면 가만 있것나? 니나 내나 앞으로 눈치 구디다. 아무소리 말고 가마이 있거라."
진즉 미영이네 언니가게인 빈터에 자리 내 주어도 신발 한컬레 못 얻어 신고 욕은 욕대로 먹을걸 생각하니 심사가 뒤틀리는 판인데 엉뚱하게 신발 하나 달라는 아지매한테 화풀이하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기 모하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노?"
진찬이아지매는 전혀 몰랐는지 다 늦게야 뚱단지같이 물었다.
"신발이 메이커라는데 만원에 판다고 하니까 평소에 안 사던 사람도 다 달라 들어서 산다 아이가?"
"천바꾸도 있네?"
"천바꾸가 먼데?"
"천바꾸 만바꾸 돌아 다닌다고 천바꾸 아이가? 물건 하나 사면 줄로 재고 쪼매 짧으면 안 사고 눈대중도 양만 작았다 하면 안 사고 천바꾸 만바꾸 돈다. 어째 저래 오래 서 있노?"
"머하는 사람인데?"
"일평생 놈팽이 아이가?"
시장통 십년을 삐대면서 천바꾸가 천바꾸 만바꾸 돈다는 이야기 첨 들었다.
먼산만 보고 다닌다고 해서 먼사이도 있었는데 죽은지 오래다.
시장통 사람들 속에는 늘 그들이 있었는데 잘 몰랐던 것이다.
눈길이 문득 한곳에 머물러 버린다.
먼산으로...
'시장에서 길을 묻다 > 시장통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럼 그렇지. (0) | 2006.03.22 |
---|---|
우리 사이 좋은 사이??? (0) | 2006.03.15 |
우울해도 웃기. (0) | 2006.03.10 |
비는 내리고... (0) | 2006.02.25 |
궁지할머니 새해 인사 (0) | 200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