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도 아니고 따뜻한 봄날도 아닌 어중잽이 날씨다.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이른 아침의 방바닥같다고 할까...
살을 에이던 추운 겨울 비하면 충분히 살 맛은 난다.
그런데 오히려 유별스럽게 죽을 맛으로 봄을 맞는다.
한 낮은 푹하다가도 저녁이면 쌀쌀해져서 그런지 감기도 안 걸리던 몸이 이렇게 이른 봄이면 생 몸살을 앓아 끙끙대니 당분간 힘들게 보낼것 같다.
자고 나서도 개운치 않아 겨우 움직이었는데 어느새 펄펄 살아서 날 듯 시장에 들어섰다.
주차장근처에 갔다가 오일장에 갔다가 시장에 들어선 시간은 오전 열한시 반쯤이다.
한창 장사 할 시간인데 쥐죽은 듯 고요함이었고 슬이아빠도 왜 늦게 오는지에 따지지도 않았다.
오일장에 간다고 군데군데 비어진 자리가 언제 지지고 볶고 싸우는 소리로 채워질지 암만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인다.
한쪽에는 사람들로 뒤덮혀 있고 이곳은 한숨으로 뒤덮혀 보였다.
어느정도 일을 해 놓고 쉬려는 참에 슬이아빠가 장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슬이아빠는 앞에 브라자가게 아저씨와 같이 갔다.
금새 다녀오더니 이번에 나하고 브라자가게 아줌마랑 다녀오란다.
아직 한번도 장구경 못했다는 말에 두번째 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장 구석 구석 돌아보았다.
장사하면서 맘 놓고 장구경 한다는게 그게 더 이상한거다.
재미없는 시장통에 들어와서 장사를 하는건지 노는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똑순이아지매가 웃기는 통에 시장통이 살아나는것 같았다.
"내가 왜 여섯시 내고향에 안 나오고 짤린 줄 아나?"
"왜요?"
"쪼이나 쪼이나 바람에 짤린기다."
"쪼이나가 먼데예?"
"꽃같은 쳐녀가 꽃밭을 헤메는데...쪼이나~ 쪼이나~ 이케 안 불렀나?"
"그래서예"
"여섯시 내고향 피디가 쪼이나가 무슨 말이냐고 즈그끼리 묻다가 계속 부르라는거야. 그래서 불렀지. 한참을 듣더니 쪼이나는 방송용으로 나가기엔 부적절한 말 같다고 하면서 얼씨구나~ 좋구나로 대신 하라는거야. 쪼이나를... 그래서 꽃같은 처녀가 꽃밭을 헤메는데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두번째 하고 세번째까지 잘 나가다가 네번째에서 쪼이나~ 쪼이나~"
듣고 있던 시장통 사람들 모두가 요절복통했다.
마칠 때 쯤에 브라자가게 아저씨가 가게 앞에 섰다.
"들어오소."
오든 말든 말이 없던 사람이 들어오라는 말을 했으니 브라자가게 아저씨가 이상한 눈치로 물었다.
"왜요?"
"티비 보여주께요."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보여준다고 봤나요?"
"아이지예. 보여주기 싫은 사람 오면 끄거든요."
브라자가게 아저씨는 슬이아빠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이내 웃음을 참지 못한다.
다 웃기를 기다렸는지 슬이아빠는 또 한마디 한다.
"옛날에 내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가 변소에 간다고 가더니 안 오는기라. 그래서 빠져 죽었나 하고 가봤더니 뒤로 앉아 있는기야."
"와? 뒤로 앉았는데요?"
"와는? 즈그집에 변소는 뒤로 앉아 있게 돼 있는거겠지요. 다들 변소 문을 향하고 앉아 있는데 그집은..."
브라자가게 아저씨는 형광등처럼 눈을 껌벅이더니 갑자기 웃음을 또 터트린다.
아마도 화장실에 뒤로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였나보다.
내가 생각해도 디게 웃긴다.
이글을 보는 사람도 망설임없이 웃어주길 바란다. ㅎㅎㅎ
'시장에서 길을 묻다 > 시장통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사이 좋은 사이??? (0) | 2006.03.15 |
---|---|
신발 한 컬레 주면 안 잡아 먹지... (0) | 2006.03.14 |
비는 내리고... (0) | 2006.02.25 |
궁지할머니 새해 인사 (0) | 2006.02.24 |
동해물과 백두산이~~~ (0) | 2006.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