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동해물과 백두산이~~~

삼천포깨비 2006. 2. 15. 23:47

비가 그쳤다가 슬그머니 한차례 다시 지나갔다.

꿉꿉한 날씨지만 춥지않은게 그나마 다행스럽다.

해가 있는지 졌는지 모를 어스름에 전을 펴고 앉았던 노점들도 어느새 가고 시장통은 텅 비었다.

손님도 없다.

심심해서 몸이 뒤틀릴 정도로 돌아가는 시계 바늘도 느리다.

 

살풋이 내린 저녁 어둠에 건너편 반찬가게 진열대 위에 빛나는 알 전등이 요염하다고나 할까.

빛이 탐스런 복숭아빛 같고 이쁘다.

콩자반을 보고 볶음 멸치를 보고 붉게 감은 배추김치를 보고 마치 치근덕거리듯 천장에서 늘어뜨린 끈에 매달렸다.

자린고비가 조기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밥 먹었듯이 나도 없는 반찬으로 저녁상 차려 반찬가게 반찬 쳐다보면서 밥 한 술 넘기고 또 쳐다 보고 밥 한 술 넘기며 맛있는 저녁으로 마쳤다.

 

"식사 했어요?"

앞에 브라자가게 아저씨가 들어오면서 인사를 한다.

만 하루 만에 인사다.

보는 사람마다 일일이 앞에 가서 인사하고 가방가게 할아버지한테 미처 인사드리지 못하면 가게에 들어가 인사하고 나온다.

처음엔 인사받기 거북할 정도로 너무 깍듯하여 시장사람들의 인사 받는 스타일이 제각각 웃음이 날만큼 어설펐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몇달째 어김없이 양반집 자손처럼 흐트러짐없이 인사를 하니 이제 받는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어제 고향 대구에 다니러 갔다 왔다며 고향 친구들에게 여기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들려줬던 모양이다.

"대구에 가니까 나보고 삼천포에 눌러 살으라고 하데예."

"머 좋은 얘기 하셨어요?"

"거 가서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노래를 불렀드랬죠. 친구들이 배를 잡고 웃데요.ㅎㅎㅎ"

"안그래도 우리 슬비도 옛날에는 애국가를 이 노래에 맞춰 부른 줄 알아요. 툭 하면 동해물과 백두산이~(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으로) 부른다니깐요.에구..."

"하여간 슬이아빠가 인물은 인물이라니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심심함이 웃음으로 엇갈리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난다.

그래서 돈 보따리 대신 웃음 보따리 싸가지고 집에 와야 했다.

브라자가게 아저씨는 어쩜 자기 전에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웅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슬비도 그러고 나두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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