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싸우다 말다...

삼천포깨비 2005. 12. 14. 00:29

"볕에 참새모양 졸졸이 앉아 그기 머꼬?"

"아이고~ 춥다! 마이 춥제?"

새벽에 판장에 가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시장통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인사를 한다.

"판장에는 바람이 불어 더 난리다. 살 사람은 없는데 있으면 모하노? 진주에서 통영에 고속도로 개통식해서 글로 다 몰리갔는가 아무도 없드라."

"맞제? 인자 거제도 통영은 더 커지는데 삼천포는 십년전이나 이십년전이나 가마이 그대로고... 즈그 하는 일이 모 있노? 도로나 팠다 뜯었다 일년 내도록 하는 일이제."

"그거라도 해야 일 했다고 돈 타내고 돈 묵을거 아이가?"

"멀 끌고 와서 삼천포 발전 시킬 일은 하나도 안하고 모 이린게 다 있노?"

"이자 다 죽었다. 홈 플러슨가 뿌라스가 들어오면 시장도 없어진다 카데."

땅바닥에 붙어 있는 햇볕을 쫒아서 앉은 자리가 우리 가게앞에 나무걸상이었다.

장사가 좀 이른 시간이라 그릇가게 앞에 몇몇이 서 있고 우리 가게 앞에 몇몇이 앉았다.

절반은 티비 드라마 이야기였다가 희망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 푸념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재미가 없는지 무표정으로 조용히 있더니 하나 둘 자리를 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랫쪽에서 싸움소리가 나서 자리를 이동한 것이었다.

신경을 쓰고 귀를 쫑끗거리니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따다다다다~" 따발총 소리 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들리는걸 보니 골목 안 쪽에서 나는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로 가게 앞에서 다투는 소리가 난다.

"쩌 아래서 싸우든기 울로 붙었는가베?"

진찬이 아지매가 큰 구경났다는 듯이 한 마디 뱉으며 지나갔다.

마주보고 장사하는 철띠기할매와 선이할매가 으르렁대고 있었다.

"시장에 오는 사람은 다 니 손님이가?"

"니 손님이고 내 손님이고 내 앞에서 하나가 살라카는데 니가 와 뺏들어 가노?"

"쳐다 보길래 사라켔지 와?"

"손님 하나가 살라케서 봉투 벌시고 있는데 뒤만 쳐다 보는 손님한테 내껀 중국산이고 니껀 국산이라는 말은 와 하노?"

듣다 보니 어제 있었던 일을 지금까지 분이 안 풀렸는지 철띠기할매가 싸움닭처럼 노려보면서 그냥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철띠기할매가 이렇게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햇볕 쪼이고 있을 때 철띠기할매와 수박언니랑 이야기 나누는걸 보고는 선이할매가 무엇이라 툭 던진 말이 화근이 되었던것 같다.

"지 말 안했는데 지 똥구녕이 구리니까 다 지 말로 들리지. 암만."

"돌아보는 사람한테 사라고 한것도 죄가? 엉?"

선이할매도 지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철띠기할매 기부터 죽이려 들었다.

그러니 옆에서 누군가 철띠기할매에게 "더 해라. 더 해라"면서 부추기니 철띠기할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안 할 소리 못 할 소리 다 나올것 같은 겁나는 순간이었다.

때 맞추어 진주할매가 나섰다.

"좀 조용히 해라. 시장통 다 샀나?"

아무도 시장통 다 살 자신이 없는지 조용해졌다.

햇볕은 땅바닥에서 엉금 엉금 기어 차가운 건물 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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