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남해 금산 보리암에 가 보다.

삼천포깨비 2006. 8. 16. 00:29

 

 

 

 

 

 

어제 이어 오늘도 나서긴 해야 하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슬이아빠는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지만 갑자기 물으면 어떡하냐며 짜증부터 냈다.

정히 그렇다면 가게 나가서 장사하든지 가까운 계곡에 몸 담구고 쉬다 오면 되지 않겠냐며 아침부터 먹자고 한다.

장사야 하려고만 하면 당장 나가서 해도 된다.

이틀간 휴가를 만든것도 별 다른 이유도 없었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야 가게 문을 닫았지만 이번만큼은 몸을 쉬게 하고 싶었다.

너무 더웠기도 했지만 찜통 더위속에 사는게 너무 회의적이기만 하니 계속 되지도 않는 장사한답시고 가게 나갔다가는 남아있는 희망까지 다 포기할 정도로 지쳤었다.

그래서 그냥 나를 위해서 쉬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랬는데 우리가족들의 움직임은 모든게 우리 슬비에 의해 슬비를 위한 휴가가 되어 버렸다.

너무 피로한 나머지 쉬는 시간이지만 슬비를 위한게 되는것도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어렸을 적 부터 시장통에서 키워 오면서 잘 데리고 놀다가도 성가실 때면 돈을 쥐어 쫒아내고 때리는 시늉을 하여 쫒아내고 친구가 찾아 오면 손에 오뎅 하나씩 쥐어서 쫒아냈다.

'엄마~ 놀다 오께~'하면서 뛰어 가던 모습 떠올릴 때면 난 마음이 아파진다.

노는 시간이라도 슬비 위한다면 좋겠다 싶고 늘 가까이 있으면서 가 보지 못한 남해 금산 보리암이 뇌리를 스친다.

 

밥을 차리면서 뒤를 돌아 보며 갑자기 생각난 듯이 남해 보리암에 가는게 좋겠다고 했다.

옆에서 슬비는 진분계에는 언제 갈건지 걱정스럽게 묻는다.

보리암에 갔다가 진분계로 가서 밥먹고 슬비는 풀장에서 수영하고 놀다 집에와서 일찍 자고 낼 부터는 방학숙제 마무리하고 피아노 급수시험 연습도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휴가 끝나고 난 다음 간섭할 여러가지 일들을 첨부해서 일렀다.

슬비는 네! 알겠습니다! 하면서 깍듯이 인사까지 하는걸 보니 기분이 최고인갑다.

 

그렇게 그렇게 춮발여 간 곳이 남해 금산 보리암.

생각보다 꽤 높은 곳이었다.

까꼬막(가파른길)을 차로 오르고도 걸어서 이십분을 올랐다.

땀이 범벅이어도 기분은 좋았다.

높은 산중에 산들 바람 만나는것도 새롭고 세상이 주먹만하게 보이는것도 새롭다.

멀리 바라 보이는 바다가 앞에 있는 바위 하나 굴리면 다 메워질것 같았다.

순간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내며 바위가 굴러가는 상상하는데 솜방망이가 가슴을 두드리는 느낌이 든다.

약숫물 한 바가지 다 마시고 법당에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있었다.

따라 신발 벗고 두발 쭉 뻗고 앉았는데 슬이아빠가 슬비와 둘이서 찾아 들어왔다.

슬이아빠는 슬비와 금산 정상으로 올라갔고 나는 슬이랑 보리암으로 빠졌다.

산을 오르다 이산가족이 되고 다시 상봉하는 순간 실랑이부터 시작된다.

슬이아빠는 산에 왔으면 정상까지 가는게 정상이고 나는 보리암에 왔지 산꼭대기 가려는게 아지니 않느냐며 그래도 땀 식히라고 얼른 자리부터 비켜 주었다.

 

바로 옆에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 여럿이서 서울가는 길로 대진을 타느냐 중앙으로 타느냐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차피 삼천포로 나와서 사천방향에서 고속도로에 얹어야 하는데 서울이라도 어느 방향인지 알아야 대진을 타든 중부를 타든 빠른 길 알려 줄 수 있다며 슬이아빠에게 도움을 주길 원했다.

슬이아빠가 대뜸 하는 소리가 "서울 갈려면 제주도에 가서 비행기 타면 바로 가는데..."

슬이아빠 농담에 익숙하지 않은 아줌마들인데 눈치 한 번 빨랐다.

한 아줌마가 배꼽잡고 웃더니 일행중 한 사람보고 제주도 가서 비행기타라고 한다.

 

보리암을 내려 삼천포로 들어오면서 늑도에 들려보고 신섬에도 들렸다.

마땅히 쉴 곳이 있으면 도중 하차하여 남은 휴가를 즐길 셈이였다.

여기저기 공사중에 횟집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앉아서 쉴 만한 그늘이 제공될 건덕지를 찾아 볼래야 눈꼽만치도 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진분계로 향하였고 도착하자마자 슬비는 풀장에 달음질치고 백숙 하나 시키고 나무그늘아래 편상 하나 자리잡고 음료수 하나 과자 봉지 하나 뜯었다.

여기저기 편상 하나씩 차지 하고 앉은 사람들 모두가 화투장 아니면 카드들고 있었는데 폼이 반쯤 마비된 상태처럼 보였다.

삐딱하니 한 쪽으로 기울어졌거나 한 손에 카드 들고 한 손에 술잔을 들었는데 얼른 마시지 않았다. ㅎ

 

적당한 시간에 백숙이 나왔고 마침 슬비와 슬이아빠가 물놀이하고 나오던 참이다.

맛있게 먹고 나는 아무렇게 엎드린 상태로 잠이 들었다.

살짝 자고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하고 가방을 뒤져 먹고 남았던 과자봉지 다시 벌리고 입에 넣었다.

이차로 물속에 들어간 부녀를 기다리기엔 지루한 시간이었다.

다음은 다 통과하자.

이제 열두시 넘긴 시간인데 한 여름밤의 열기는 식지 않아 온 몸이 실버들처럼 늘어진다.

이틀 잘 놀았으니 아무 생각 말고 얼른 자기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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