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흰옷을 입고 언뜻 지나가는것 같았다.
까만 어둠속에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고 비였다.
열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비가 온다.
좀 참았다가 집에 가고 나면 오지...하면서 그냥 바라 보았다.
비는 한 줄로 서서 빛을 내고 있다.
걸상에 쭉 걸터 앉은 손님들은 비가 더 이상 오기 전에 일어서려는지 오고가는 말이 빨라진다.
조금 흥분한 표정으로 한 손을 허리 춤에 걸치고 반쯤 서서 더 말할 필요없다며 한 손은 위로 들어서 흔들었다.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일거리 떨어진 사람끼리 모여 어디론가 일거리 있는 곳으로 뜨자는 소리같았다.
한 사람은 간다는것 같고, 한 사람은 이핑계 저핑계 대는 것 같고...
조금만 더 귀 기울이면 무엇때문에 괴로운 표정짓고 힘들어하고 흥분해하는지 알 수 있지만 오늘따라 너무 정신없었다.
비가 오기 천만다행이지 아니 왔으면 오늘 중으로는 집에 오지 못할 뻔 했다.
슬이아빠도 손님이 주는 술을 거절 않고 넙죽넙죽 받아마신게 평소 보다 오바한것 같다.
족발 사러 온 손님에게 족발 맛을 보이면서 자기가 마시던 술잔을 디민다.
"술 하고 같이 마시면 제 맛 나니까 한 잔 하시고 족발 맛 좀 보이소."
"아니... 술은 안돼요. 차 가지고 왔거든요."
"차는 나 주고 술 마시고 걸어 가면 되는데...차가 비쌉니까? 너무 비싸면 저도 못 타거든요.좋은 집도 아무나 사는게 아니자나요."
술 한 잔 들어가니 말도많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술이 더 들어가면 말도 거칠어지고 아무튼 못난 사람되어 보기 싫다.
아침부너 출발은 좋았다.
오늘 티비에 나온다고 기분 좋아 특별 안주도 만들었고 소주도 사양않고 다 받아 마셨다.
그리고는 술취한 김에 한 마디 하겠다고 하더니 삐닥하게 돌려 말하는 폼이 마누라 덕에 티비 나왔다는 소리 영 걸렸나 보다.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로 마누라 덕에 출세했다고 했는데 그게 자기 가슴에 못 박힌것이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날 보고 어쩌란 말인지 정말 괴롭다.
친정아버진 동네사람한테 한 턱 낸다고 술자리 만드시고 책까지 주문 받았다고 내일 당장 보내줄 수 있냐며 전화 주셨다.
조금 후 엄마가 따로이 전화를 하시더니 티비에 나오는걸 보면서 아버지 혼자서 우셨다는걸 알려주신다.
큰 딸 키우면서 많은 기대 거셨다가 그동안 내 사는것 보고는 하늘 무너지는 느낌으로 허망해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더니 오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것이다.
얼마나 좋으셨는지 눈에 선하게 보이지마는 난 그래도 그게 아니었다.
먹고 사는것 걱정없이 잘 살아 가는걸 보여주고 싶은데 그것도 아니면서 티비에 나와 할 말이 없다.
책주문도 할겸 편집장한테 전화 걸어서 속상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편집장은 날 나무란다.
못 사는게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란다.
책 내어서 티비 나오게 된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이냐면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시장에서 장사한다고 다 글 쓰는것도 아니고 글 쓴다고 다 책내는게 아닌데 이보다 더 좋은 일 어딧냐는 것이다.
그래...
이보다 더 좋은 일 눈 뜨고 찾을 길 없으면 눈 감고 찾아 봐야겠다.
꿈속에서는 모두가 다정한 사람들이고 친절한 사람들이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만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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