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그러면 그렇치...

삼천포깨비 2007. 3. 7. 01:10

틀림없이 경칩이렸다?

그런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어떤 신호를 받았길래 도로 겨울속으로 방향을 돌렸을까.

날씨가 찹찹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추워서 얼어 죽겠다.

그동안 따뜻이 지내다 갑자기 추우니 옷도 얇은 탓도 있고 봄이라는 선물을 벌써 뜯어 버렸던 것일게다.

 

며칠전에 김밥 사러 온 할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꼭 이 맘때면 한번씩 날씨가 행패를 부리게 돼 있다. 반 늙은이 얼어 죽는 날씨가 이 맘때 인데 하도 따뜻해서 요량을 모르겠네. 며칠은 춥다 하는데 단디해야지..."

이미 일기예보엔서 강풍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해서 벗었던 내복을 다시 꺼내 입기는 했다.

아파트에선 바람의 세기가 매우 거칠어 건너다 보이는 풋샬 경기장 그물망을 몽땅 휩쓸고갈 정도였다.

까만 비닐 봉지가 날아 오르다 풀석 주저 앉듯 떨어졌다.

마치 얼어죽은 까마귀가 떨어지는것 같았다.

특별히 생각할 것도 아니었으면서도 집을 나서며 보았던 들판의 풍경을 더듬으며 강풍에 배가 뒤집히고 비닐하우스가 날아가 농작물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뉴스를 보니 그 할머니가 참으로 용하지 않은가.

당시엔 믿지도 않던 이야기고 자세히 듣지도 않다가 생각해보니 신기할 뿐이다.

 

바람이 한바탕 소용돌이치면서 가게앞에 세워 놓은 양산대를 흔들어 쓸어 트리곤  달아났다.

곧 잠잠하니 햇볕 든 곳에 한 두사람 모이다 나중에는 숲속의 난장이처럼 일곱은 되는 듯 했다.

늘상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걱정스러운 일들이 다 차지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들리지 않았지만 장사 안되는 이야기거나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건물을 내 놓았는데 도대체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눈짓으로 옆사람에게 전달하였지만 아무도 몰랐던지 고개는 계속 옆으로 돌렸다.

어떤 이는 무리해서 건물을 샀기 때문이며. 또 어떤 이는 장사가 안 돼서 메이커를 몇번을 바꾸는 바람에 그랬다고 하고 이런 추측들을 클림없는 사실처럼 짧고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또 하나는 돈만 아는 사람이 이번 설에 죽었단다.

젊은 사람이 돈 밖에 모르고 살았다는데 어느날 뇌졸증으로 멀쩡한 사람이 바보처럼 걸어가는걸 보았는데 저런 병은 죽지 않고 본인 고생에다 옆사람 고생시키는거라고 하더니 쉽게 죽었단다.

이 세상엔 돈 많은 사람 아무도 무시 못하는데 하늘은 돈 많다는건 무시해 버렸나 보다.ㅎ

 

"앗따 디게 춥네. 못 살것다.

"진짜 못 살겠다"

"와?"

"장사가 안 되니까 못 살지. 장사 잘 되면 돈이 도는데 못 살것도 없는거구.그러면 무슨 걱정이게?"

"그래도 안 아프니까 움직이고 장사해서 먹고 안 사나?"

"그래. 맞다. 건강한 것이 하늘이 준 큰 복인기야."

"대 운인기지... 대 운..."

"바람이 많이 잤제? 이 정도 바람은... 이 시장통은 안방이다. 저 밖에는 다 나자빠졌다드라. 수박이 굴러다닌다 안 하드나? 그것도 지 복이지 머."

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지 너나 할것 없이 다 같은 입장이면서 남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는것인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 한 둘씩 자리 찾아 빠져 나갔다.

 

어느새 해 저문지 오래된 시간이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더 춥다.

슬이아빠는 가스난로에 가스가 남아있을거라 생각하고 틀었는데 푸른 불꽃이 부르르 떨면서 열을 내지 못했다.

가스가 없으니 새로 갈아 끼워야 하느냐 마느냐 하다 참자는 쪽으로 결정을 했는데 이번 한 주 동안은 계속 추울것이라 하니 생각이 바꾼다.

내일 새 통으로 넣기로하고 차에 있는 잠바 들고 와서 입었다.

한결 따뜻하다며 전기로 된 온풍기를 내 무릎쪽에 바싹 당겨 주었다.

일일드라마'나쁜여자 좋은여자'를 보는 중이었는데 최진실이 나오는걸 보고 아직 참 이쁜 여자라 느끼며 슬이아빠한테 물었다.

"최진실이하고 최진실이 남편이 바람피우는 여자 있잖아. 그 여자하고 누가 이뻐?"

"조성민이가 바람을 폈어?"

"아니. 저기 이재룡이가 좋아하는 여자가 저기 부잣집 며느린데 둘이서 세상에..."

"돈 많은 여자가 좋겠지 머"

"그게 아니고... 진실이 남편이 저 여자 좋다고 하니 여자도 애도 나 몰라라하고 남편도 나 몰라라하고 울고 짜고 하니 말도 안돼."

"와 말이 안되노? 둘이 바꿔 살면 말 되네..."

"으이구~ 그게 아니고 내 말은 남부럽지 않은데 뭐가 모잘라서 저 난리치냐고..."

"우리로선 안 될지 몰라도 저 둘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내 말은 최진실이하고 성현아하고 둘 중에 누가 이쁘냐니까 말이 엉뚱하게 빠졌다니까...슬이아빠 같으면 누구랑 살았으면 좋겠어?"

"둘 다!"

그러면 그렇치 그렇구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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