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하루 가운데

잘 살고 못 사는건...

삼천포깨비 2008. 4. 1. 00:26

지금 가게에 오는 손님은 시장통에서 부터 언제나 오던 손님이었다.

한동안 발길을 끊겼던 손님도 물어 물어 찾아 오셨다.

물어봐도 가르켜 주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그럴리가...

큰 마트 앞이라 찾기도 쉽고 좁은 삼천포 바닥에 아무리 멀리 뛰어 봤자 벼룩이처럼 거기서 거기다.

무슨 배짱이라고...

미리 알리지도 않고 갑작스레 옮겨 놓고는 손님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손님 오는거 보면 신기하다며 슬이아빠가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깊게 주름이 파인 얼굴이지만  웃는 모습이 이쁘고 입은 모습이 부자티가 나는 할머니가 오셨다.

"시장에 갔다가 헛 걸음하고 다시 여기까정 온다고 내 허리 꼬부라지는 줄 알았다."

"할머니~ 진짜 오랜만이네요."

할머니 발품 팔았던게 고의적은 아니지만 미안한 맘으로 친절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권했다.

 

"언제 왔노? 느그 가게가 생선가게로 바꿨더라. 여그가 더 잘 되는기가? 자리가 참 크고 존네?"

"아이고~ 할머니~"

슬이아빠가 반갑다며 할머니를 부르자 그제사 질문이 중단되었다.

"족발 얼른 썰어 두가. 배 시간이 바빠서 가야제."

"만원어치만 썰으까예?"

"어데? 이만원어치...돈 마이 벌었제? 젊어서 사서 고생해도 된다."

"벌긴요. 시장에서 나오니까 다들 돈 벌어서 나온 줄 알아요."

 

"할머니는 어떻게 돈 벌었는데요?"

"내? 돈 있으면 모하노? 내 청춘 어디로 가고 없다. 배 사업 하다가 오십 들어 빚덩어리에 얹혀 빈 손으로 섬에 들어갔제. 조개 파서 뭍에 갖고와 팔아서 쌀 반 됫박 사면 보리는 한 됫박 사서 섞어 묵었다. 나머지기 돈은 빚 갚는다고 정신 없었제. 빚 갚는것도 재미가 나더라. 남 줄거 한 푼 안남기고 다 갚고 나니 육십이드라. 첨에 자빠질 때 잘 살던 시동생이 조금만 보탰어도 그리 고생 안 했제. 돈 좀 빌리러 간 남편의 낡은 운동화를 쓰레기통에 처 박는 동서를 보니 눈에 피 눈물이 나드라. 그래 이 앙 다물고 안 살았나."

"와~ 그랬어예?"

"젊은 부부가 이리 열심히 사는데 끝이 안 있겠나? 잘 살기다."

슬이아빠는 더 하는 말을 알고나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들여 쓴 족발을 포장하고 봉투에 담았다.

택시를 불러달라는 할머니 말에 기분 좋은 김에 우리 차로 뱃 머리까지 모시겠다며 보따리를 들고 앞장섰다.

 

필사적으로 살아왔던 할머니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돈으로 못 사는 청춘을 잃었어도 자랑 삼을 돈이라도 있으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처럼 빚이 있는게 아니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도저히 부자는 힘들겠다.

남 줄게 없으면 부자라고 하드라만.

잘 살고 못 살고는 그렇다치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책이나 실컷 읽을까 하였더니 참 어려운 일 같다.

그 부산한 소란스러움속에서...

이제는 세상사 초월한 듯한 무표정으로 혼자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 보거나 티비를 통해 사소한 동작마저 눈여겨 보는게 고작이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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