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자.

삼천포깨비 2008. 5. 5. 02:00

오늘은 한가한 구름들이 모였나보다.

흐릿한 날씨는 게으른 여자들에게 딱 알맞다.

그늘 찾지 않아도 되고 모자며 선그라스며 분칠까지 생략해도 된다.

특히. 빈 틈없는 여자가 나들이 했을 때도...

나는 빈 틈이 많은 탓에 선그라스며 모자를 챙겼다.

모처럼 친구들 만나는 날인데 감추고 싶은 곳이 손과 발과 눈과 입처럼 움직이는것만 빼고는 다다.

한가롭게 거울을 보면서 좌우로 돌려가며 폼 잡고 있을 때 슬이아빠는 가게에서 열심히 족발을 썰고 있다.

친구들의 산행이 황매산으로 정해졌는데 그곳까지 족발 배달이었다.

슬비는 엄마의 행동을 보면서 웃음을 못 참고 결국은 크게 터드리고 만다.

왜그러느냐고 물었다.

선그라스를 쓴것과 안 쓴것과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엄마. 선그라스 쓰면 김을동 같단 말야. 다섯째 이모 닮았고...다섯째 이모는 이쁜데. 안 이쁜것만 닮았다."

인정해야한다.

몇 겹으로 구분해야할지 모를 배를 보니 인정하지 않고 쓸데없는 꾸지람을 늘어 놓으면 엄마라는 존재까지 잊어버리고 놀릴께 뻔하다.

마저 인정하려면 편한 츄리닝바지에 잠바로 입고 모자만 눌러썼다.

선그라스는 식탁위에 올려 놓은 채 가게로 향했다.

 

산행방에 황매산을 가든 한라산을 가든 그 곳은 내가 참석하리라는 꿈조차 꾸지 않았기에 많이 설레었다.

마침 지난번에 다녀간 친구들이 족발 맛을 보았고 이왕이면...

덕분에 족발도 팔고 나는 친구들 얼굴도 공짜로 보게 된 것이다.

아앗~싸~!!

 

전날 산행은 단념을 했기에 하산하는 시간을 맞추어 황매산 덕만주차장까지 가면 되는것이다.

초행길이라 일찍 서두르려 했는데 가게문 열어 놓으니 손님이 짬짬이 찾아 왔다.

포장해서 가져 가는 손님은 문제가 없었다.

소주 한 잔만 하겠다는 손님이 있었는데 열두시까지 약속을 정하니 그래도 마시겠다는 것이다.

광우병이야기며 독도이야기까지 나왔는데 종일가도 끝이 나지 않을 이야기였는데 12시가 되니 정확하게 일어났다.

우리도 곧장 출발했다.

세시쯤 하산 예정이라더니 네시까지로 미뤄졌다.

한시간을 합천댐쪽으로 가다 시간이 남으면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촬영지가 있다는 곳까지 가기로 했는데 합천댐에서 돌아와야 했다.

커다란 저수지라 불러야할지 호수라고 불러야할지 생각도 없이 바라봤다.

주위를 둘러봐도 별것 없었다.

 

시간에 맞추어 주차장으로 들어섰고 얼마 안 있어 낯 익은 친구들이 보였다.

며칠전에 본 친구도 있고 칠 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얼떨결에 할아버지 되었다는 친구는 일빳따로 만나니 더 반갑다.

내 댓글로 날 기억하고도 남을게다.

슬이아빠가 했던 말을 곧이 곧대로 적었던것이다.

고 이학년 딸년보고 앞으로 연애를 하더라도 임신만 하지 말랬다는 말을...

슬이아빠한테 했던 말 그대로 적었다고 했는데 무 반응이니 쓸데없는 말은 아닌가보다.

 

전국 각지에서 예순다섯명이랬다.

특별히 마련된 자리가 없어 시멘트 바닥에 퍼질고 앉아 정신없이 먹기에 바쁜가 했더니 이내 이인일조씩 되어 이야기 나누기 더 바쁘다.

시위에 가담한 은밀한 대화같기도 하고 장삿꾼들의 흥정처럼 쉽게쉽게 머리를 끄덕인다.

단 하루만의 자유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친구들 있을까?

여기에도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 있을까?

산행까지 참석하지 않았지만 족발 배달 핑계삼아 잠시 가게에서 벗어날 수 있는것에 벅차 좋아 죽을 지경이다.

보고 싶었던 친구 만난 덕에 돌아 오는길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만남을 위해 일곱시간을 비워 둔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간판 불 부터 켰다.

점잖던 날씨가 빗방울로 변하고 나니 족발 주문이 여러군데 있었다.

친구들 얼굴이 훨훨 날아다니는 머리속을 어서 정리하고 장사에 신경써야 했다.

오늘같은 날은 재수 있는 날이다.

일곱시에 도착하여 열한시까지 장사하였는데 평소보다 더 많이 팔렸다.

어제부터 내려와 계시는 부모님이 웬만하면 일찍 마치라 하였지만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몇시에 마치냐는 전화에 열한시라고 짤막한 대답만 하였는데 열한시 십분쯤 집앞에 도착하였을 때 동생차에서 엄마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진 주무시고 엄마는 심심하셨던지 바람 쐬러 나오셨던것이다.

자꾸만 시계를 쳐다 보시며 일찍 자야지...하시면서도 삼십분을 더 앉아 계시다 가셨다.

그러고 이러길 또 한시간이다.

이제 고단한 잠 꿀맛으로 만들 차례...

이것도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자가 할 몫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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