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하루 가운데

슬이는 수학여행중.

삼천포깨비 2008. 5. 22. 13:31

"어디고?"

"여기? 숙소..."

"숙소는 숙소고... 어디에 있냐고?"

"내? 방에..."

"아니. 어디쯤에 있냐니까? 전라도가 제주도가?"

"몰라."

"엄마하고 말장난하나? 정말 모르나?"

"어. 깜깜해서 어딘지 몰라."

"니 죽을래? 약은 단디 먹나? 체크한거는 낮에 먹는거라며. 그거 확인하고 먹었나? 아프나 안 아프나?"

"엄마. 희안하게 안 아픈데 건딜면 아프다. 엄마. 옆에 은미도 나처럼 혹 났는데."

"아프데?"

"아직은 잘 모르겠데."

"일단 약 잘 먹고 병원가서 의사한테 물어보고 조직검사는 거기서 하던지 서울서 하던지 그때 보자. 재미나게나 놀아."

"어. 알아따. 엄마. 여기는 양평."

"이게 엄말 가꼬 놀아라. 양평이면 할아버지집하고 가깝네. 전화 함 해봐. 맛있는거 싸 가지고 얼른 가실긴데."

"근데 엄마. 내가 할아버지 오실 때 잘못한게 많아서 몬하겠다. 엄마가 해주면 안돼?"

"내가 미쳤니? 내가 말했지. 언제 무슨 일 터질 줄 모르니 언제나 잘 해야 한다고... 지금 표시 나제?"

"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술 마시고 들키지 말어."

"안 마신다."

"알았다. 끊는다."

 

핸드폰을 닫고 생각에 잠긴다.

수학여행중에 틀림없이 논다고 정신 팔려서 약먹는것도 잊고 있을까 염려했는데 다 챙겨 먹었단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발랄한 슬이가 고맙다.

만우절에 거짓말부터 찾아간 서울병원을 오고 가길 여러번째였다.

한번은 배가 아팠고 두번째는 머리 뒷통수 혹 때문이다.

지어준 약이 안 들어서 씨티촬영까지 하였고 이번 수학여행 다녀오면 조직검사까지 할 예정이다.

부딪친 적도 없다는데 밤톨만한게 불거져 있었다.

아프다는게 문제인데 의사의 반응은 문제가 안 되는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여러가지 원인도 있지만 스트레스라 원인일 수 있다니 걱정이다.

우리가 클 때 좀처럼 볼 수 없는 증상들이다.

슬이한테만큼은 공부하라는 소리도 해 본 적이 없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는 말 했지만 정 하기 싫다면 자격증을 따던지 취미든 특기든 먹고 사는 일에 답이 있다면 좋겠다는 말은 했다.

슬이아빠는 다 때려치우고 아프지만 말라고 한다.

그것까지도 말 듣기 싫은 아이일까???

 

'엄마. 내 늦는다'

'가쑤나. 빨리 온나'

'ㅜㅜㅜ 몰러'

시간이 열두시가 되어 가는데 지금 늦는다는 문자가 오면 도대체 얼마나 엄마 애간장 태우려는걸까 하고 얼른 통화 버튼 눌렀다.

여러번 통화음이 울리고서야 슬이가 전화를 받는다.

"왜..."

"와 늦는데? 어서 온나. 지금 시간이 몇시고?"

"알겠다. 엄마. 하나. 둘. �!"

"띵동~~"

슬이가 문 앞에서 엄마를 또 놀렸다.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문 열어 주니 슬이는 쨘~!하면서 웃기니 웃음을 아무리 참으려 애써도 웃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슬이 내일이면 쨘하고 나타나겠다.

수학여행중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꺼내면 며칠밤 새도 모자랄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이야기하는 재주 웃기는 재주 있다는거 자신은 모를거다.

지금까지 어이없이 웃겨주던 이야기들 생각하면 어디 내 놔도 아깝지 않는 딸이다.

 

'살아 있는 이야기 > 하루 가운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려한 변신  (0) 2008.07.07
슬비 솜씨  (0) 2008.06.27
만우절 속편.  (0) 2008.05.01
졸도 직전...  (0) 2008.04.28
삼천포여자중학교 학부모회의로...  (0) 200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