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천포깨비 2008. 9. 23. 16:59

이크.

지금 몇 시야?

자고 있는 방 벽걸이 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거실로 나가 시계부터 올려다봤다.

6시 50분.

늦어도 많이 늦었다.

이미 다섯 시에 알람으로 맞춘 핸드폰에선 까무러치게 울었으리라.

충전시킨다고 거실 한쪽 구석에 얌전히 자리 잡고 충전표시에는 빵빵하게 초록불이 들어 와 있다.

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였다가 깜짝 놀라는 바람에 자극이 되었는지 희미했던 사방이 갑자기 환해진다.

 

어머.

입에서 약하게 그러면서도 강한 소리가 났다.

흠칫 놀랄 수밖에는.

어두컴컴한 거실 한 쪽에 슬이 아빠가 신문을 보다가 날 돌아다보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게 모야?

이 사람이 일부러 날 깨우지 않았단 말이야?

언제 벌써 일어났던지 말끔 상태로 화장실에서 다 보고 나온 신문을 거실에서 또 보고 가지런히 접으면서 일어나려했다.

 

왜. 날 깨우지 그랬어?

깨우면 모할 기고. 더 자라. 옷이나 찾아놓고. 양말도 두꺼운 걸로. 만날 쓰레빠 신다가 항공모함을 신으려니 발가락도 아푸고.

발가락 아프다는 소리에 신발에 눈이 갔다.

얼마나 무거울지 쳐다봐도 어깨가 뻐근해 온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부드럽게 말 한마디 못하고 말았다.

잘 다녀와. 아니. 오늘 고생해. 이것도 아니고……. 이따 봐. 수고해…….

이 수많은 인사 중에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아 탈락 탈락.

 

더운 날 땡볕에 철근 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상상도 못하는 나는 양심에 털이 소복이 나 있을 거 같다.

며칠째 인데 한 번도 고마운 맘이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역시 후회가 된다.

여보. 사랑해……. 까지는 내 입으로도 못하지만…….

아니. 먼저 미친 여자 취급할 것이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는 했어야 했다.

 

같이 살아온 25년. 거의 24시간을 붙어 지냈다.

그러다보니 맘에 안 들었을 때의 눈치. 새벽이면 내장 뒤집는 기침소리. 퇴비 프로그램 중 당구나 바둑. 타이라 쇼.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이쑤시개. 코를 푼 휴지뭉치. 아침이면 집 한 구석에 늘어나는 소주병. 안주 찌꺼기나 된장이 떨어져 굳어진 술상.

이 모든 것들이 같이 붙어 있었다.

슬이 아빠가 일하러 나가고 부터는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에서 시달리다 해방된 기분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떨린다.

지금까지 24시간 고스란히 바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기분이라면 온전히 살리는 만무하다.

 

실은 그랬다.

살기 싫어서 죽으려고까지 했다.

다른 여자들은 살기 싫으면 이혼하자고 덤비고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었는데 왜 하필이면 죽기로 작정했는지 모르겠다.

나를 몰라주는 게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 게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지도.

말이라도 힘이 나게 격려하였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거뜬히 견딜 수 있었을 거다.

엊그제만 해도 티비를 보다가 맘 상한 말을 들었다.

조혜련이 손을 좀 보라는 것이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상이라며 채널을 홱 돌리곤 했는데 지금은 생각을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조혜련의 손을 보면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눈물이 날 정도란다.

내 손은 고생하지 않았냐며 내밀었다.

내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

24시간을 붙어서 무얼 어떻게 하며 살았는지 눈으로 보고도 이런 말 하는 인간이다.

 

자기는 바빠서 눈이 핑핑 돌아갈 때도 가만있다가 어찌할 바를 몰라 동동거릴 때 의자에서 겨우 엉덩이를 떼곤 했다.

화가 치밀어 뚫어지게 쳐다봐도 개무시로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단단히 잡아매고 있었던 건 잠자리에서의 곤혹스러움이다.

죽어도 싫은데 죽어도 해야 했다.

여자를 위한답시고 과시를 하려한 건지 시간을 오래 끌려 했다.

더 고약한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이빨까지 갈아도 남자로서 부족함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로 여겼다.

부부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법으로 정해졌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오히려 은근히 주위사람들에게 자기 불만을 꺼내고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이상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어디가 닳나. 눈 딱 감고 한 번 줘라.

마치 여자들 끼리 정해진 법 같았다.

하나같이 같은 소리였다.

눈물 나다가 죽는 방법을 생각한다.

 

어느 날 지켜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찬장에 쥐약 병을 넣어 두었다.

요새 쥐약은 사람이 아무리 먹어도 안 죽는다.

그 소리 들으면서도 찬장 속 쥐약 병을 꽤 오래 바라보았다.

안 죽는다니 쑈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슬이가 커가고 슬비가 걸음마 떼면서 손을 탈까 염려에 갑작스럽게 휴지통으로 던졌다.

마치 죄악인 것처럼 느껴져 어느새 죽고 싶다는 생각도 우르르 몰려 도망가고 말았다.

 

또 다시 늘 그대로 살아야 한다.

일이 힘들어서 가난이 싫어서 남편이 지겨워서 견디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같이 쳐다보는 시계에 24시간 매달림이었고 미움이 아니라 지겨움이었다.

우리에게 돈이 없는 만큼 애정이 없는지도 모른다.

 

새삼 슬이 아빠가 나이 들어 애정의 끈을 잡아당기고 있다.

어느 날 술이 잔뜩 취한 눈에서 눈물 몇 방울 떨어지는걸 보았다.

이기심으로 마음을 에워쌓았던 벽을 뜯어 고치겠다고 했다.

그리곤 수첩에 몇 자 갈기더니 북북 찢어서는 슬비편으로 전달되었다.

 

'한 치도 지지 않으려는 당신 성격 너무 싫다.

너무 똑똑하지만 뭔가 넉넉함은 없다.

나에게 여유를 보이기 싫다는 건가.

책을 좋아하고 형이상학적인 생각을 하는 당신을 부러워하면서

한편 질투. 열등감.

그래도 우리 애들 엄마. 나에게 마누라.

참고.

서로 사랑하고 부족해도 사랑하고…….'

아마 슬이 아빠가 달라지기 시작한 게 여기서 부터다.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설명한다?

우선 내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 싸울 일이 생겨도 말을 덧붙이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늘 비협조적이던 말투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분고분했다.

아.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 는걸 알았다.

이 분위기를 타고 각 방쓰기에서 한 방쓰기로 자연스럽게 베게가 이동하였는데

이것도 오래지 않아 '니는 니대로 나는 나대로'였다.

 

하루는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다.

그날따라 집에 가져가는 짐이 몇 개나 되어서 양손에 들고 가방을 어깨에 메고 겨드랑엔 책을 낀 상태다.

오토바이 앞에 바구니에 넣어도 될 물건을 미처 생각지도 않고 바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자세도 잡히지 않았는데 곧장 부르릉 하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첨에는 겨드랑에 책이 빠질 것 같았고 너무 힘을 주니 팔목이 시큰거리더니 손가락은 손가락대로 떨어질듯 아팠다.

아야.아이고…….하면서 신음소리를 내도 들은 척 만 척 대로변을 달리다 신호등 받아서 서는가 싶더니 엉덩이도 틀기 전에 내빼기 시작했다.

집에까지의 오 분 거리가 지옥처럼 느꼈다.

달리고 있는 오토바이에서 뛰어 내릴까도 했다.

도착하여 오토바이에 내렸을 땐 손에 든 거며 어깨에 멘 거며 다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씩씩거렸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대로 뚜벅뚜벅 앞서 걸어가는 슬이 아빠다.

지금까지 같이 산 내가 미친년이지.

물론 속으로만.

 

노가다 나간 지 5일째.

노가다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신출내기들이 견디기엔 고비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슬이 아빠를 보고 3. 6. 9라며 3일을 잘 지내고 6일을 잘 넘기고 9일까지 넘어가면 일머리도 알고 몸에 붙어 좀 나아질 거라며 위로했다.

조선소에 다니는 친구는 한 달이 고비일 것이라고도 했고 또 한 친구는 아무래도 석 달은 견뎌야 막노동판에 익숙해 질거라한다.

 

내일은 6시에 깨워.

며칠 지나니 많이 여유 로와 졌다.

꿈을 꾸다가도 어둠을 �아내며 거뜬히 일어났다.

몇 시고?

잠결인데 시간부터 묻는다.

다섯 시

한 삼십분만. 옆에 좀 누었다 일어나자.

같은 잠자리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서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하여 따로 잤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 몸이 많이 자유로워 있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나에겐 섹스는 추상적이다.

 

일 나간 지 일주 일만에 땡.

오늘부로 잘렸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거야.

아직 사흘은 더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왜 벌써 짤라버리지?

순간 입맛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한 오십 명의 인부 중에 뒤늦게 들어 온 사람하고 같이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추석 앞두고 미리 몇 사람이라도 추려내는것이다.

어찌되었건 추석을 지나고 다시 일 시작하는 걸로 하고 명절 쉬는 동안은 푹 쉬게 되었다.

사정도 모르는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이 많이 힘들거니 잘 해주라는 것이다.

내 남편 내가 더 잘 아는데 누나가 일 소개해주었다고 단순한 격려 차원에서보다 큰소리도 치고 싶었을 게다.

배달때문에 새벽같이 일 나갔던 사람을 가게에 붙들어 매고 있다는 게 맘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집에 가서 쉬게 하라는 게 전화를 한 누나의 뜻이었다.

일 짤렸는데요?

어? 언제? 바까봐라.

동생과 통화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누나는 펄펄 뛰기 시작한다.

반장 놈인지 어떤 놈인지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작정이란다.

내일 한 놈 죽겠군…….

슬이 아빠는 남의 말 하듯이 누나의 말에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끊었다.

정 안되면 추석 지나고 새로운 일자리 찾아서 준다고 약속까지 했단다.

 

한 며칠을 더 벌어 오면 크게 아쉬움 없이 명절을 보낼 것 같았는데 예상을 빗나가버렸다.

별 볼일 없이 엉덩이 붙이고 티비만 보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였을까 짜증이 났을까 스티커를 들고 나갔다.

때 맞춰 배달 전화가 왔다.

하필이면 꼭 이렇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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