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하루 가운데

슬비는...

삼천포깨비 2009. 6. 18. 17:18

날이 꽤 뜨겁다.

슬비가 일찍 오는 바람에 자전거 타고 가게로 왔다.

난... 슬비 뒤에 타고.

 

요즘 슬비는 콘테이너 박스 같은 엄마를 태우고 다닌다.

차비가 아깝다며 자전거 끌고 나오는 슬비를 보고 설마....

엉겹결에 뒤에 탔지만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봐 옷 속으로 몸을 숨기고 싶었다.

슬비가 팔 개월이 되었을 때 첫 걸음 떼던 날 기적이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드랬다.

그때와 같았다.

무조건 감동적이다.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숨이 차지만  자랑스러운 몸짓이다.

 

슬비가 일찍 집에 온 건 중등 미술 예선전을 치룬것이다.

자기가 최고로 잘 그렸다나?

별로 썩 잘 그린 그림이 눈에 뜨이지 않았나 보다.

상을 노리고 풍경화쪽이 아니고 정물화쪽으로 그렸다고 세세한 설명까지 한다.

요즘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릴것 없이 모두가 약아 빠졌다.

좋아하는걸 그리는게 아니고 숫자가 적은 쪽으로 가야 확률이 높다는거겠지.

학원에서도 그렇게 말 했을거고.

 

큰 상은 거의 빠지지 않는데 엄마가 입을 싹 닦아 버리니 학원에서 서운해 하는것 같다.

-엄마. 다른 애들은 입선만 해도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면서 피자랑 통닭이랑 막 사오고 그러거든.

-그려? 엄마도 사줘?

-아니? 돈이 아깝다. 학원비가 얼만데...

슬비는 오히려 아니라고...

안 그래도 된다고 못 을 박는다.

며칠전에 학원 안 다니고도 그림 잘 그리는 사람 있다며 타고 나야지 학원만 다니면 뭐하냐고 잔소리 한 적이 있었다.

혹시 학원 보내지 않을까바 슬비한테는 그게 큰 걱정거리다.

학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참는다고 한다.

저더러 터치가 약하다며 나무라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 학생한테는 잘 그린다며 칭찬 일색이란다.

-갸는 그림 잘 그리는갑다.

-아니. 솔직히 내가 그렇게 그리면 맨날 혼날껄...

-딴데 옮길래?

-아니. 남자 선생님이 잘 가르쳐 준다. 내가 이번에 그림 잘 그려서 상 받으면 선생님이 미안해 하겠지? ㅎㅎ

-새로 온 아는 니 친구가?

-아니. 유치원 다닐 때는 같이 다녔는데 일 년 후배. 아빠 의사선생님이고...

-아...하....

누군가 했더니 삼천포에서 누구하면 알만한 집 딸이다.

내 기분이 알 만해진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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