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십년감수...

삼천포깨비 2009. 7. 21. 18:07

-엄마~ 너무 아파... 엉엉엉~

갑작스레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아파 죽겠단다.

조금전만해도 멀쩡하다가 아프다는 소리에 마음은 으르렁거리며 싸울 준비부터 했다.

토요일이라 점심 같이 먹자고 하니 학교에서 짜장면 사 준다고 해서 그냥 넘겼고 저녁은 아빠랑 같이 가게서 먹자고 다시 약속을 했다.

기분좋게 알겠다는 애가 아빠 혼자 가게 들어 왔고 이어 슬이 전화를 받은것이다.

-얼마나 아프노? 또 병원 가야하나?

-응.... 아아악~!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더니 전화기는 꺼졌다.

-슬이 아펐나?

-집에 들어가니까 아프다고 누었드라.

-그럼 얼마나 아픈지 물어 보지...

-엄마만 찾던데....

-근데 와 이제 야그 하는데?

-지금 할라꼬 하는데 전화 오네...

기가 찬다....

차려 놓은 밥을 도저히 못 뜨고 집에 갈 준비했다.

그 사이 슬이아빠는 밥을 물에 말아 마셨는지 그릇은 비워졌고 차에 탔다.

 

현관 입구에서 부터 슬이가 얼마나 아픈지 비명소리가 들린다.

팬티를 걸치다 말고 무릎세우고 앉은 자세인데 얼굴이며 손이 하얗다.

몸에 손을 대려니 또 다시 자즈러지며 파르라니 떨었다.

-엄마 이것봐..

-뭐야? 이게? 언제부터 이런거야?

-꼼짝할 수 없어. 너무 아파... 온 몸이 찢어지는거 같어...

가만히 쳐다 보니 도저히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장면이다.

주먹만한 혹이 자꾸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친듯이 울어제끼는 슬이에게 달리 할 말이 없다.

살고 싶으면 일어나 병원에 가자고 했다.

손도 못 대게 하니 어쩔 방법도 없고 119부르자니 더 힘들게 할것 같았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차에 올랐고 병원 앞에 내렸다.

 

토요일이라 응급실 문을 열었다.

상황 설명하니 의사선생님은 안계시니 진통제로만 처방해 준다고 한다.

아니면 진주 큰 병원으로 가란다.

옆에 산부인과 간판이 보였다.

전화를 걸어 여차저차해서 의사선생님을 만나야한다고 했다.

일단 들어와서 진찰을 받아보자는 말에 '이제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병인지 왜 이런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슬이가 하는 말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책상 모서리에 찍혔다는것이다.

그 부분은 몰라도 허벅지에 멍든 부분이 있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찍히고 나서 조금 아팠고 부풀러 올랐지만 저절로 가라앉아서 이상 없으려니 해서 넘어 갔단다.

샤워할 때 마다 아프긴 했지만 오늘 처럼 아프진 않았다고 한다.

전에 머리 아프고 배 아프고 하면서 몇번이나 병원에 가서 큰 탈이 없다는걸 알고는 혼자서 참았다는것이다.

혹시나 하면서 인터넷을 뒤져 보고는 약이라도 바를까 싶어서 엄마한테 약 사오라는 말만 아빠한테 전하고는 혼자서 병은 키운것이었다.

이런 젠장할...

슬이도 나쁘고 엄마도 나쁘다.

 

간호사의 전화로 의사선생님이 곧 오셨고 지체없이 수술로 들어간단다.

퇴근한 임상병리사 마취과선생님 간호원들 비상소집이 20분만에 끝났고 수술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면회가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걱정 말라며 수술할 부위를 보여주고 설명부터 하셨다.

이만큼 병을 키울 동안에 혼자 많이 아팠을것이라며 이미 세포가 죽어서 한 쪽은 재생 불가라 한다.

찍혀도 오지게 찍힌거인지...에고.

아무리 외상이라 하지만 수술한 부위를 말을 하기가 껄끄럽다.

사람들 생각들이 보통 보여주지 않는 부분에다 은밀하게 여기기 때문에 입밖에 꺼낸다는 자체가 불순하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수술은 잘 끝났고 마취가 깨고 회복되는 동안 여러가지 설명을 들어야 했다.

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슬이 얼굴을 보게 되었다.

입술이 터져서 빨간 딱지가 찰싹 달라 붙어 있다.

파리해진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열이 오르는것이다.

다음날 아침까지 슬비와 번갈아가며 미지근한 물 수건으로 얼굴이며 목아래까지 닦아주었다.

생각보다 오래 고생 시키진 않았다.

배 고프다는 소리만 자꾸한다.

똥 싼다고 힘 주는 바람에 더 커졌다는데 그 후론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맹장 수술할 때도 이렇게까지 배가 안 고팠다. 속이 쓰릴 정도로 배가 고프다. 엄마.

-이제 살만하나? 배 고프다는소리 다 하그로...

공포와 위험천만의 분위기와는 너무 다르게 살아있는 자체가 감동이다.

 

비 그쳤다.

하늘에 비 그치고 내 마음에 비도 그쳤다.

감사할 따름이다.

24시간 대기중인 산부인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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