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나는 법이다.
화장품아저씨가 짐을 꾸리어 떠나고 가게가 옷 장사로 바뀌었다.
장삿꾼끼리는 배팅이라고 하는데 두달간 서로 가게를 바꾸어 장사를 한단다.
별도 보고 달도 보고 아무쪼록 숨도 자주 쉬면서 올때까지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고는 훌쩍 떠났다.
화장품가게안은 벌써 옷으로 걸려져있었고 한쪽엔 박스며 옷걸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여러사람들이 거쳐가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태연하게 옷 정리하고 있었다.
딱할 정도로 장사가 안되는거 같다.
“무조건 삼천원 오천원... 가진거라곤 물건밖에 남은게 없습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삼천원 오천원... 마지막으로 싸게 물건 처분하오니 삼천원내고 가져 가세요.”
츄리닝 바지는 삼천원 청바지는 오천원이다.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따금씩 한두사람이 쳐다보긴 했지만 가는 길이 더 바빠보였다.
남정네 셋이서 실망스런 눈 빛으로 나란히 시위하듯 묵묵히 바라볼뿐이다.
자기 가게를 가지고 있으면서 너무 장사가 안되어 전국을 돌아 다녀본다고 한다.
도시에도 안되는 장사가 여기라고 별수있을라구...
감추고 싶은건지 말수가 적은건지 긴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수출 호조로 경기가 나아진다고 한지가 오래전이다.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주가도 천포인트를 넘겼드랬다.
주의깊게 바라볼 틈도 없이 줄줄이 미끄러지는데 불가피한 조정이란다.
오늘에사 체감경기가 조금 더디어질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연구만 할 줄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할일이 없어지자 잠시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숙여 무언가 찾아낸 것이 읽다 만 무라카미 류의 ‘와인 한잔의 진실’을 꺼내들었다.
벌건 대낮이다.
흥분될만큼 몸이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새댁아~ 이거 한단만 갈아주라. 동정하는 요랑치고 한단 사라. 내가 허리가 아퍼 죽겄다.”
할머니가 파마늘을 두단은 허리에 끼고 한단은 오른손에 들고 내 앞에 내민다.
“저... 필요없는데요.”
조금전 보다 만 책속에 섹스장면이 머릿속에 가득하여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으니 더 간절히 쳐다본다.
“이거 하나...”
“됐다니까요...”
두달을 떠났던 화장품 아저씨가 돌아왔다.
"시장에서 길을 물어 사랑을 찾아가세요...그래서 님도 보고 뽕도 따 가세요..."
화장품 아저씨는 여전히 나의 팬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건강해 보이는 외모가 이미 쾌활한 성격을 느끼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반가워했다.
그동안 어디 다녀왔냐는 인사로 자연스럽게 초대받은 손님처럼 가게안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화장품을 사들고 일어난다.
보는이 마다 나무랄데 없는 장돌뱅이라고 감탄한다.
물
마시러 들어가는 사람 잠깐 쉬었다 가려는 사람들에게 주저않고 자리 내 주는 아저씨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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