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원통해서 못 살겠다??

삼천포깨비 2005. 6. 29. 23:38

여기가 시장통인지 수상히 여길만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 짙은 안개속을 헤메는 그런 기분이었다.

날씨마저도 분위기 맞추듯이 비가 올듯하면서도 오진 않고 흐리기만하다.

미자할매와 철띠기 할매는 오늘 상태를 알았는지 벌써 전을 펴 놓고 있었다.

그래봤자 나는 평소보다 이십분정도 늦었을것이다.

오일장이라서 한바퀴 돌아서 천천히 걸으면서 여기 저기 기웃대었다.

돈 한푼없이 집 나온 여자처럼 구경만 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가게 들어와서 어깨에 맨 가방을 내려놓고 돈통을 쳐다봤다.

천원짜리 한장도 없으니 김밥 한줄도 못팔았나보다.

점심 준비부터 했다.

슬이아빠는 천천히 먹자고 한다.

티비나 보고 시간되면 밥차리자고 생각하고 리모콘을 들어 와이티엔으로 채널을 바꿨다.

좀 앉아서 티비나 볼까 맘먹고 커피한잔 타는데 밖이 시끄럽다.

 

건너편에 진주할매 옆에 누군가 앉아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억센 사투리로 다다다하더니

"세월가면~ 잊어질까~ 내가 미친년 같다."

내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니까 눈이 마주치자 노래를 멈추었다.

벌써 부터 자리잡고 앉아서 요란한 소리로 한숨을 쉬다가 노래를 하다가 이야기로 바뀌는 중이었다.

"우리 새끼 커서 야물고 하니까 이제 쳐다보데... 전에 얼마나 형제간이 보고 싶은지 일하다 말고 가면 '목욕탕에 좀 다니라...더러운 인간아~' 시상에...성이 되가꼬...아이고... 내동생이 산다고 욕봤다는소리 안하고 그라드라. 옌날에 목깐에 자주 가기나 하나...손에 흙 묻히고 살면서 목욕 할 새가 어딨노 말이다."

"그래...지금은 개안나?"

"말이라꼬? 살만하니까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데 지금도 돈이 아까바가꼬 난장에 앉아가 국시묵고 그래서 내가 깐풍기 사준다. 아들이 성공하니까 몬산다고 비웃도 안한다."

"아지매하고 내하고 갑장이라는데 너무 젊네?"

밤깍는 할매가 신나게 떠드는 아지매를 더 기분좋게 띄운다.

"배암띠가? 내랑 갑장이네? 엔가이 좀 앉아서 밤이나 깍지 말고 좀 꾸미보소. 아지매가 갑장이 맞나? 엔가이 청승지기라. 내는 지금까지 눈에도 바리고 입에도 바리고 안하나? 그래도 한은 많다. 아들 공부 시킬만큼 시킸고 살만큼 살았는데도 내가 한이 맺혀 이란다. 얼마나 술을 묵고 구세가 있어가꼬 잠도 못자가꼬 내가 귓구멍을 이래가 잤다. 시어메는 시어메대로 큰방솥에 밥해묵고 내는 작은방솥에 밥해묵고... 그러다 나가 살았는데 손 봐노코 살만하면 이사가라카고 그래서 여덟번을 이사다닜다. 다시 시아배가 들어오라케서 들어갔제. 밉다카니까 닭 두마리 키우는데 그넘의 닭이 똥을 싸서 난장같이 만들어서 애멕이데...이자는 그 시어매 시아배 영감 제사 내가 다 지낸다."

"그럼 지금 영감은요?"

"친구처럼 지내제...혼인신고 안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재미나게 산다. 그러니 이래 꾸미제..."

"아지매가 남자를 좋아하는갑다."

"그기 아이고 이사람아 내 말 들어봐라...원통해서 못살겠네~ 원통해서 못살겠네~ 잡은 손 뿌리치고 떠난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