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이천오년 팔월 팔일...

삼천포깨비 2005. 8. 11. 00:06

여름비는 그야말로 신나는 파티였다.

뜨거움이 거의 혼수상태로 만들더니 발악적인 소리를 내며 환상적으로 내렸다.

폭발 일보직전으로 세차던 빗소리는 한참만에 그쳤다.

그러다 다시 맛 좀 봐라면서 아예 일직선으로 갈기는것이다.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물이 꾸역 꾸역 하수구에서 역류하는것이 괴물 아가리속처럼 섬뜩했다.

주위로 거머리처럼 생긴 벌레들이 미리 기어 오르고 있었는데 너무 많아서 징그럽기만 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 마자 소름이 끼치어서 바보처럼 멍청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수구에서 올리는 물은 아랑곳없이 발목까지 차게 하더니 그 징그러운 벌레의 행방을 알수없게 만들었다.

혹여 낼 발등을 타고 오르지 않을까 한발을 들어서 확인 했을 때 멀쩡한 발을 보고서야 살아남은 듯 안심을 했다.

옆에 있던 슬비는 비가 올때까지만 해도 좋아서 빗속에 우산을 들고선 돌리기도 하고 즐거워했는데 비가 너무 많아서 가게 안까지 넘치는 걸 보고는 겁먹은 얼굴로 쳐다 보았다.

"엄마~ 어떡해~~ 이제 장사 안하고 일찍 집에 가겠네?"

여우같은게 지금 가게 걱정하는게 아니고 장사 안하고 집에 일찍 가서 맛있는거 해먹는것부터 상상하고 있는것이다.

"아빠도 없는데 큰일 났다. 그치?"

슬이아빠와 같이 장사하던 삼촌도 떨어져 나갔고 혼자서 하고 있으니 연락할 길은 전혀 없었다.

"아빠가 일찍 온다고 했으니 우리가 치우는 동안에 뉴스라도 들었다면 오겠지 머. 슬비하고 엄마하고 어서 치우자."

"어. 그래. 엄마~ 내가 다 도와주면 맛있는거 해 주는거다."

"맛있는거 머?"

"삼겹살 먹자."

"야가~ 니 배보니까 겁난다. 그래가꼬 무슨 삼겹살이고?"

비는 오고 별다른 이유없이 슬비와 나는 행복한 시간을 맞은 기분으로 그러면서도 어서 물이 더 들기전에 치우고 일찍 들어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장사할 생각은 잊은지 오래다.

"아줌마~ 순대가 제일 작게 얼마예요?"

언제 왔는지 아줌마가 순대를 사러 온 모양이다.

"이천원이요."

"그럼 이천원어치만 썰어주세요."

"네."

나는 정리하다 말고 냉큼 순대를 꺼내서 썰어 담아주었다.

"아줌마! 순대가 왜이래 작아요?"

"네? 내딴엔 지금 마친다고 얼마나 많이 드렸는데 이게 작다니요."

"아인데? 저~집보다 훨씬 작은데..."

"지금 이천원어치보다 훨 많이 쌌어요. 맛있게 드세요."

아줌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더 이상 아무소리없이 이천원을 꺼내주고는 가버렸다.

뒤따라 손님이 또 왔다.

"아줌마 일인분에 얼마예요?"

"일인분 삼천원요."

"더 쪼끔 안팔아요?"

"일인분 삼천원인데 아줌마한테 특별히 이천원어치 파께요."

"네? 그러실래요? 고마워요. 호호~"

나는 아까보다 훨씬 적게 썰어서 담아주었다.

"아이구~ 마니 주시네. 잘 먹으께여~"

진작 일인분에 삼천원이라 할껄 그랬다보다. ㅎㅎㅎ

 

우리가게는 그래도 물이 흥건하니 발목 조금 위까지만 차고 올랐는데 두부가게부터 갈대샘까지는 허벅지를 넘어가고 있었다.

물이 좀체 빠지지 않으니 시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했다.

번영회장은 오전부터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다니면서 여러차례 돌아보고 있었던 터다.

사무국장은 한손에 디카를 들고 연신 찍어대면서 피해상황을 꼼꼼이 적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무조건 사천시장을 불러 내라고 소리를 쳤다.

하수구 공사를 잘못해서 이지경이라면서 당장 부르라는 고함소리가 아주 당당하게 시장통을 울렸다.

마침 오늘 오전에 대형할인매장 입점 저지에 대한 공청회가 있었는데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이럴때는 시장을 찾는다는게 기분이 참으로 씁쓸하니 떫떠름했다.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오게 되면 시장이 죽는게 기정 사실로 되어있고 막상 당하는 사람은 건물을 가지는 사람이 타격이 클것이라는 예상을 하는데도 남의 일처럼 여기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던 사람이다.

시장이 오면 물난리가 해결되는걸 진작 알았어야하는데...

비는 그쳤어도 물은 계속 샘물처럼 펑펑 흘러들어왔다.

나는 반바지차림이라 두발로 물속을 저으면서 갈대샘까지 가봤다.

누군가 갈대샘에서 물이 넘친다는 말에 혹시 갈대샘속에 물길이 터졌나 싶었다.

전혀 아니었고, 그 앞에 하수구에서 역류하는걸 눈으로 확인하고는 물이 날때까지 기다리는 도리밖엔 없었다.

얼마 안 있어 물이 빠지기 시작했고 땅바닥이 서서히 드러났다.

아마도 비가 계속 내리었다면 무슨 사태가 일어나도 단단이 일어나고도 남았다.

매미때에도 밤늦게 물이 드는 시간에 비가 내리어 순식간에 일이 벌어진것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단도리한다고 웬만한 물건들을 이층으로 올려다 놓고 수선을 피우다 보니 힘이 다 빠져버렸다.

다시 내 힘으로 가게를 열 엄두는 나질 않았다.

그런데 손님은 자꾸만 왔다가 헛탕치고 간다.

열까 말까 하다가 큰 맘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슬비가 잊지 않고 삼겹살을 사자고 해서 만원어치를 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당도하자 마자 슬이아빠의 전화가 온것이다.

안그래도 걱정이 되어 부랴 부랴 달려왔더니 그 사이 집에 갔느냐면서 좀더 지켜 보고 있다가 들어오겠다는 말에 맘 놓고 삼겹살을 구웠다.

오늘 하나 마나한 장사를 했어도 말리지 못하는 비때문에 아주 잠시동안은 좋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