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하여 집에 갔더니 컴퓨터에 시선을 꽂은채로 남편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식탁위엔 점심을 혼자 차려먹었는지 어지럽혀져 있고 내 잔소리탓인지 그래도
반찬통은 냉장고에 말끔히 치워넣었다. 언제나 먹은 그대로 식탁에 펼쳐놓는통에
언제나 내 입에서는 따발총이 따따따... 그동안 총알깨나 쏘아댔을 것이다.
평소 크리스마스 이브이건 뭐건 관심이 없는 남편인지라 나도 그냥 편안한 옷차림으로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요즘 읽는 책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조용한 집안에는
컴퓨터앞에 앉은 남편과 그리고 내 품속에 안겨 쌔근쌔근 잠자는 우리 강아지뿐...
아들녀석이 아르바이트하는 피자집은 오늘이 가장 바쁜날이라며 수업이 없는 오늘은
아침일찍 나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면 이 녀석이 가장 계획도 많고 그나마
고3의 막바지라서 재미있게 보낼테지만 신통하게도 이녀석은 아랑곳없이 착실하게
아르바이트를 잘 나가고 있다. 하긴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애지중지 아끼는 그 녀석의
보물1호인 중고 일제오토바이를 구입할 때 빌려간 내 돈을 갚으려면 어쩔수 없지 않은가?
앞으로 한달은 족히 더 일을 해야 빚(?)을 갚을 수 있을텐데 그냥 내버려두라고 할까하다가
일부러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다. 이또한 이 녀석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배워
얻어지는게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그냥 두고 지켜볼 뿐이다.
폭설로 아직 녹아내리지 않은 도로는 빙판이건만 이브인지라 차가 많이 밀린다.
십오층아래 넘쳐나는 차들를 바라보다가 무심코 남편에게 한마디를 던져 보았다.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그럴까?"
'???????'
이상하다? 사실은 영화보러 가고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평소 영화에는 영 취미가
없어하던 남편인지라 별반 기대도 하지 않고 무심코 던져 본 말이었는데 내말이
떨어지자마자 흔쾌히 응답하는 남편이 신기해서 멀뚱멀뚱 바라 보았다.
"정말 가는거지?"
난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상영시간과 요즘 어떤영화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기라성같은 유명배우들이 출연하는 [태풍]이 그럴싸하기도 하고 제목도 마음에
딱 들길래 그것으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일단 영화를 한 편 보고 우아하게
레스토랑에도 들리자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레스토랑이라면 일단 찡그리고부터
보는 남편이 천지가 개벽을 했는지 무조건 오케이! 하는것이다.
이것 참말로 이상타?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시원시원해진 걸까?
하지만 그깟일로 감격해할 내가 아니지. 사실은 조금 감격하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그런데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웬차들이 그렇게 밀리는지
평소같으면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거의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나보다.
이미 예매했던 영화는 시작을 해버렸고 하는 수없이 두시간 후의 표를 다시 예매해놓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자고 했던 계획을 실행키위해 근처의 레스토랑을 찾으려는데
영화관 바로옆 포장마차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는순간 우린 뜻이 통했다.
[싱싱한 굴구이가 배터지게 먹고 일인분에 오천원!]
우와~ 싸다. 값이 싼것도 매력이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그 부분이 마음에
딱 들었던 것이다. 역시 사십대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우린 근사한 레스토랑은
아예 입밖에 꺼내지도 않고 발맞추어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연탄난로를 피워놓은
포장마차안은 무척이나 훈훈했고 바닥은 자갈밭이어서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초저녁인탓에 손님들은 두어테이블밖에 없었고 단둘이 온사람들은 우리부부밖에
없다. 남편은 소주 한 병과 굴구이를 청했고 아마 양이 적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커다란 접시에 수북하게 담겨져나오는 굴을 보고 속으로 약간 놀랐다.
연탄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숯에 구워먹는 굴의 달콤한 맛과 향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고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는 어찌 그렇게 달고 쌉싸름한지...
술을 즐겨하지 않는 터라 술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푸짐한 안주와 부담없는
장소가 딱 맞아 떨어져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역시 우리는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것들에게 길들여져있음을, 격식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운 옷과 같지 않을까?
남편은 커다란 면장갑과 양식먹을 때 사용하는 나이프를 들고 숯불에 입이 쩍쩍
벌어지는 굴을 까서 내게 건네 주었고 난 그저 낼름낼름 받아먹기만 하면 되었다.
소주 한 병이 다 마셔갈즈음 굴은 바닥이 났고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우리가
한 접시의 굴을 먹는 동안 서너접시는 더 시켜먹는 듯 굴을 가져다주는 주인의
표정이 그리 환하지는 않아 우리는 굴을 더 달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자 오히려 주인이 먼저 또 수북한 굴접시를 가져다
준다. 우린 미안한 마음에 다시 소주를 한 병 시켰고 반접시쯤 먹어갈즈음
배가 부르기보다는 질려서 더 이상 먹지를 못하였다. 이건 아무리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된다지만 영 눈치보이는게 아닌가 싶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잔돈은 그만두시라고
했더니 주인은 한사코 잔돈을 돌려주시며 그래야 다음에 또 오실게아니냐고 하신다.
내내 슬그머니 눈치만 보던 우리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기분좋에 포장마차를 나와 영화관으로 향했고 얼마나 남편은 얼마나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지 7,8년은 더 된것 같다고 말한다.그동안 너무나 바쁘고 여유없이 살았음이 후회
스럽댜며 앞으로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난 그동안 아이들과
때론 친구들과 자주 영화관을 찾곤 했었는데 나역시 남편을 챙기지 않았음이 후회되었다.
영화를 정할 때 요즘 한참 인기라는 [킹콩]과 [태풍]중에 무엇을 볼까 망설이다가
잘생기고 멋진 장동건씨가 나오는 [태풍]을 보기로 결정했는데 영화를 보는내내
커다란 화면 가득히 담겨있는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는 장면들, 그리고 행여 그들의 표정
하나라도 놓칠까봐 그야말로 너무나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다.
정말 우리 한국영화가 외국영화못지않음을 다시 한 번 느꼈고 두시간내내 영화에
푸욱 빠져서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 본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과 손을 잡고 나오는데 느닷없이
"이제 또 어드메 가고 싶슴?"
하며 장동건의 이북말투를 흉내내는 남편때문에 난 폭소를 터트려야했다.
남편에게 이런 면도 있었을까? 새삼스레 새로운 남편의 면모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유쾌한 기분이다. 지금껏 이십년이 넘도록 같이 살아왔지만
단 둘이서 이렇게 멋진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 적은 단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 백화점에 선물이나 사러 나가고 같이 근사한
식당에 더러 가기도 했었지만 아이들이 훌쩍 자란 뒤에는 서로가 바빠 잊고 살았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에는 이렇게 작은 것부터 서로 같이
공유하며 나누어가며 알콩달콩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이브 저녁이었다.
그런데 장동건씨는 어쩜 그렇게 잘 생겼을까?
2004.12.24
일찍 퇴근하여 집에 갔더니 컴퓨터에 시선을 꽂은채로 남편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식탁위엔 점심을 혼자 차려먹었는지 어지럽혀져 있고 내 잔소리탓인지 그래도
반찬통은 냉장고에 말끔히 치워넣었다. 언제나 먹은 그대로 식탁에 펼쳐놓는통에
언제나 내 입에서는 따발총이 따따따... 그동안 총알깨나 쏘아댔을 것이다.
평소 크리스마스 이브이건 뭐건 관심이 없는 남편인지라 나도 그냥 편안한 옷차림으로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요즘 읽는 책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조용한 집안에는
컴퓨터앞에 앉은 남편과 그리고 내 품속에 안겨 쌔근쌔근 잠자는 우리 강아지뿐...
아들녀석이 아르바이트하는 피자집은 오늘이 가장 바쁜날이라며 수업이 없는 오늘은
아침일찍 나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면 이 녀석이 가장 계획도 많고 그나마
고3의 막바지라서 재미있게 보낼테지만 신통하게도 이녀석은 아랑곳없이 착실하게
아르바이트를 잘 나가고 있다. 하긴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애지중지 아끼는 그 녀석의
보물1호인 중고 일제오토바이를 구입할 때 빌려간 내 돈을 갚으려면 어쩔수 없지 않은가?
앞으로 한달은 족히 더 일을 해야 빚(?)을 갚을 수 있을텐데 그냥 내버려두라고 할까하다가
일부러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다. 이또한 이 녀석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배워
얻어지는게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그냥 두고 지켜볼 뿐이다.
폭설로 아직 녹아내리지 않은 도로는 빙판이건만 이브인지라 차가 많이 밀린다.
십오층아래 넘쳐나는 차들를 바라보다가 무심코 남편에게 한마디를 던져 보았다.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그럴까?"
'???????'
이상하다? 사실은 영화보러 가고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평소 영화에는 영 취미가
없어하던 남편인지라 별반 기대도 하지 않고 무심코 던져 본 말이었는데 내말이
떨어지자마자 흔쾌히 응답하는 남편이 신기해서 멀뚱멀뚱 바라 보았다.
"정말 가는거지?"
난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상영시간과 요즘 어떤영화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기라성같은 유명배우들이 출연하는 [태풍]이 그럴싸하기도 하고 제목도 마음에
딱 들길래 그것으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일단 영화를 한 편 보고 우아하게
레스토랑에도 들리자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레스토랑이라면 일단 찡그리고부터
보는 남편이 천지가 개벽을 했는지 무조건 오케이! 하는것이다.
이것 참말로 이상타?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시원시원해진 걸까?
하지만 그깟일로 감격해할 내가 아니지. 사실은 조금 감격하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그런데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웬차들이 그렇게 밀리는지
평소같으면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거의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나보다.
이미 예매했던 영화는 시작을 해버렸고 하는 수없이 두시간 후의 표를 다시 예매해놓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자고 했던 계획을 실행키위해 근처의 레스토랑을 찾으려는데
영화관 바로옆 포장마차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는순간 우린 뜻이 통했다.
[싱싱한 굴구이가 배터지게 먹고 일인분에 오천원!]
우와~ 싸다. 값이 싼것도 매력이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그 부분이 마음에
딱 들었던 것이다. 역시 사십대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우린 근사한 레스토랑은
아예 입밖에 꺼내지도 않고 발맞추어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연탄난로를 피워놓은
포장마차안은 무척이나 훈훈했고 바닥은 자갈밭이어서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초저녁인탓에 손님들은 두어테이블밖에 없었고 단둘이 온사람들은 우리부부밖에
없다. 남편은 소주 한 병과 굴구이를 청했고 아마 양이 적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커다란 접시에 수북하게 담겨져나오는 굴을 보고 속으로 약간 놀랐다.
연탄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숯에 구워먹는 굴의 달콤한 맛과 향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고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는 어찌 그렇게 달고 쌉싸름한지...
술을 즐겨하지 않는 터라 술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푸짐한 안주와 부담없는
장소가 딱 맞아 떨어져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역시 우리는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것들에게 길들여져있음을, 격식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운 옷과 같지 않을까?
남편은 커다란 면장갑과 양식먹을 때 사용하는 나이프를 들고 숯불에 입이 쩍쩍
벌어지는 굴을 까서 내게 건네 주었고 난 그저 낼름낼름 받아먹기만 하면 되었다.
소주 한 병이 다 마셔갈즈음 굴은 바닥이 났고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우리가
한 접시의 굴을 먹는 동안 서너접시는 더 시켜먹는 듯 굴을 가져다주는 주인의
표정이 그리 환하지는 않아 우리는 굴을 더 달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자 오히려 주인이 먼저 또 수북한 굴접시를 가져다
준다. 우린 미안한 마음에 다시 소주를 한 병 시켰고 반접시쯤 먹어갈즈음
배가 부르기보다는 질려서 더 이상 먹지를 못하였다. 이건 아무리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된다지만 영 눈치보이는게 아닌가 싶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잔돈은 그만두시라고
했더니 주인은 한사코 잔돈을 돌려주시며 그래야 다음에 또 오실게아니냐고 하신다.
내내 슬그머니 눈치만 보던 우리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기분좋에 포장마차를 나와 영화관으로 향했고 얼마나 남편은 얼마나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지 7,8년은 더 된것 같다고 말한다.그동안 너무나 바쁘고 여유없이 살았음이 후회
스럽댜며 앞으로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난 그동안 아이들과
때론 친구들과 자주 영화관을 찾곤 했었는데 나역시 남편을 챙기지 않았음이 후회되었다.
영화를 정할 때 요즘 한참 인기라는 [킹콩]과 [태풍]중에 무엇을 볼까 망설이다가
잘생기고 멋진 장동건씨가 나오는 [태풍]을 보기로 결정했는데 영화를 보는내내
커다란 화면 가득히 담겨있는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는 장면들, 그리고 행여 그들의 표정
하나라도 놓칠까봐 그야말로 너무나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다.
정말 우리 한국영화가 외국영화못지않음을 다시 한 번 느꼈고 두시간내내 영화에
푸욱 빠져서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 본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과 손을 잡고 나오는데 느닷없이
"이제 또 어드메 가고 싶슴?"
하며 장동건의 이북말투를 흉내내는 남편때문에 난 폭소를 터트려야했다.
남편에게 이런 면도 있었을까? 새삼스레 새로운 남편의 면모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유쾌한 기분이다. 지금껏 이십년이 넘도록 같이 살아왔지만
단 둘이서 이렇게 멋진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 적은 단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 백화점에 선물이나 사러 나가고 같이 근사한
식당에 더러 가기도 했었지만 아이들이 훌쩍 자란 뒤에는 서로가 바빠 잊고 살았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에는 이렇게 작은 것부터 서로 같이
공유하며 나누어가며 알콩달콩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이브 저녁이었다.
그런데 장동건씨는 어쩜 그렇게 잘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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