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비다.
잘 자고 일어나 생각없이 밖을 보니 비가 보이지 않지만 내리는 중이었다.
커다란 유리창에 하얀 김이 서려 있더니 한 줄로 서서 물줄기로 변해 창을 타고 흐른다.
밖에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는걸 느끼고 따뜻한 옷으로 입고 나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옷을 뒤적였다.
요즘들어 마땅하게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또 뒤지는것이다.
살이 웬만큼 쪄야지...
겨울동안 고무줄로 된 솜바지에 두터운 옷으로 배를 가리니 들어갈때 까지 먹어댔다.
그러니 살이 안찌고 배기겠냐구...
이 짜증스러움을 벗기라도 하듯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비구름이 내려 앉았는지 안개인지 산 아래까지 깔렸다.
무얼 입고 나가나하는 고민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섰다.
또 흰 머리카락이다.
이닦으면서 머리밑에 소복이 솟은 흰 머리카락이 무서운것을 들여다보는것 처럼 날 놀래켰다.
염색한지 한달 조금 넘었는데 남 괴로운줄 모르고 상냥스레 반기다니 하나도 안 반갑다.
흰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으라고 당부한 말씀대로 파뿌리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 순간 감동해야 되는게 아닐까?
하루에도 열두번을 살으까 말까 하는 생각으로 이십년을 견뎠고 당신 말씀대로 파뿌리 되도록 살았으니 이 영광(?) 누구에게 돌려야하나.
겁 집어 먹은 얼굴을 비누칠했다.
씻고 싶지 않았다.
어이없이 먹은 세월을 탓할 어린 나이가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
확실한건 머리밑이 전체가 하얗게 퍼진걸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였다.
배가 고프다.
냉장고 문을 여니 돼지고기가 있다.
아침부터 반찬할게 없었는데 냉장고에 돼지고기가 보여서 신김치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맞는 바지가 없다고 걱정한게 얼마되지도 않는데 젓가락이 고기에게로 간다.
우선 먹고 보자.
실컷 먹었으니 어제 입던 바지 도로 줏어 입고 나가는 수 밖엔...
그래서 오늘도 바지는 못 빨았다.
내일은 빨 수 있을런지...
'살아 있는 이야기 > 쉼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천포 초등학교 운동회 (0) | 2006.05.04 |
---|---|
내 표는 어디로? (0) | 2006.04.26 |
망할 놈의 하루... (0) | 2006.04.11 |
삼천포 망산공원에 올랐더라. (0) | 2006.04.06 |
2006년 삼천포초등학교 학부모회의 (0) | 200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