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도깨비가 보는 세상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다.

삼천포깨비 2006. 5. 14. 02:09

어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을 맞았건만 까마득하게 느껴지면서도 금방 바늘에 찔린 아픔처럼 밀려오는건 왜 일까...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었다고 해야겠다.

 

와룡문화제 백일장에 심사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열흘 전에 받았다.

그 전에 이야기대회에도 심사위원에 참석 해 주길 바랬지만 내 입장으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여서 한귀로 듣고 흘려 버린 적도 있었는데 이번 백일장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참석해 보리라 맘 먹었다.

사천시 문인협회 주관이기 때문에 이 참에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 만날 기회도 있어 좋았고 주로 초등부나 중등부 학생들의 운문이나 산문을 다루니 내가 학교 다니면서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십여년의 대회에 나간 경력(?)으로 시를 쓸 줄은 모르나 볼 줄은 알겠다는 자부심도있었다.

그러면서도 슬이아빠 눈치보기에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를 판이었지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백일장 심사위로 참석에 응하고 말았다.

아침에 아홉시 반까지라는 약속에 다른 날 보다 일찍 서둘러서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도 밥 먹여서 보내고 세탁기도 다 돌려 놓은 상태에 슬이아빠 공차고 와서 샤워하는 동안 방바닥 치우는 중에 핸폰이 울린다.

사천시 문인 혐회 회장의 전화였고 아홉시 반까지는 나오라는 확약을 하는것이다.

통화내용을 못 들은 슬이아빠는 화장실에서 나오다 대충 짐작이 가는지 몇시 까지 가면 되는지 물었다.

아홉시면 가게에 나가는지라 같이 나가면 딱 맞을것 같아서 가는 길에 태워주면 되겠다고 했더니 시간 맞추어 일어나 주었다.

 

시간이 일렀는지 백일장이라는 현수막만 있었고 본부석을 지정하는 책걸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후에 와룡문화제 도우미로 공무원이 와서는 책상과 걸상을 갖다 주고 한참을 서서 이야기 주고 받던 문혐회원들중에 나이 많은 순서로 자리 권하여 앉았다.

아는 사람이라곤 문화원장님었던 최송량님과 사천시지부 문협회장 박대을씨뿐이었다.

문협회장의 부름이었기에 당연 반갑게 인사는 하였지만 하나도 아는 이 없으니 서먹거리고 어색한 기분으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중간중간 디카만 열심히 눌렀다.

행사장에 와서야 알았지만 열시에 원고지 배부하여  열두시까지 원고 접수를 마감하고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야 원고 심사가 들어간다고 했다.

학생들의 재잘거림에 선생님들은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것 같다.

어찌나 정신없게 떠드는지 서로 뺨을 비빈듯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들이며 웃는 소리가 속력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혼을 빼 놓는 것이다.

행사 시작을 알리는 문협 사무국장의 마이크 소리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것 같이 조용해졌다.

국기를 향하여 경례까지 하고 시제를 알려주었다.

시제는 '잎새'와 '물'이었다.

'잎새'는 운문이고 '물'은 산문으로 쓰란다.

동시에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원고지 배부에 들어갔다.

학생들 인솔교사가 와서 원고지를 가져갔고 미처 등록 못한 학생은 따로이 한 장씩 받았다.

일반부에는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풋된 어린 시절 나처럼 문학을 꿈꾸며 바이런이니 릴케니 하면서 시집 한권쯤은 옆구리에 끼고 있어 봄 직한 고운 태가 있어 보였다.

정중히 인사도 드리면서 사귀어 볼 걸 하는 생각은 지금에서야 든다.

 

젊은 여선생님이 뛰어 왔다.

"선생님~ 잎새와 잎의 차이점은 뭡니까?"

시제를 내신 분께 질문을 하는것이다.

잠시 머뭇하시더니 "그냥 잎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짤막한 대답이었다.

"초등학생은 잎이라는 생각은 해도 잎새라 하면 너무 어려워 해요."

여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잎과 잎새의 설명을 쉽게 해 주고 싶었나 보다.

아주 열심이였다.

돌아 가자마자 데리고 온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는 요목조목 설명을 하면서 시간이 아직 많으니 여유있게 시를 쓰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한쪽으로 가 보니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자리를 펴 놓고 아예 배깔고 엎디었다.

여봐란 듯이 하늘 쳐다 보는 아이도 있고 고개를 푹 떨구고는 있지만 무감한 상태같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표정은 한결같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우리 슬비가 서예로 특선을 받아 전시를 하고 있다는 전시관을 찾았다.

초등학생들의 붓글씨가 눈에 띄였다.

슬비것 부터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주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화가 언니 김수연님이 전시관 입구에 앉아서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뜻밖에 만남의 장소여서인지 어쩐일인지부터 물었다.

딸내미 작품이 전시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생각이 난 김에 찾아 왔다고 하면서 잠시 후에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는 전시관을 쭉 둘러 보았다.

한바퀴를 다 돌아도 보이지 않던 슬비 작품이 맨 나중에야 눈에 들어온다.

삼천포 초등학교 오학년 이 슬비라는 글씨가 이처럼 반가울 줄이야.

사군자를 어른이 그린 만큼 그럴듯 하게 폼났다.

일단 증명서를 떼 듯 디카로 찍어놓고는 얼른 화가 언니한테로 갔다.

지난 이야기며 작년에 책을 낸 이야기까지 단숨에 끝냈다.

십칠팔년전에 레스토랑할 때 단골 손님이었던 화가언니였는데 나를 예사로 보지 않았다면서 하는 말끝마다 감동 받는다.

열심히 하는 내가 보기 좋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 살리면서 앞으로 십년 쯤은 고생을 각오하고 열심히 살라는 당부까지 해 주신다.

감사한 마음 전달 할 길은 내가 쓴 책을 드리는것이었는데 마침 가지고 있는 책이 어느 친구에게 싸인해서 보냈다가 수취인불가로 되돌아 온 책이었다.

다른 이에게 싸인 한거라서 책만 구경하고 새로이 한 권을 드리겠다고 했드니 당장 가지겠노라며 책을 달라고 하셨다.

미안해 하면서도 오히려 고맙기도 했다.

자잘한 이야기 속에 가슴 뭉클해 질 때가 잦아져서 이러구 계속 있다가는 눈물 쏟게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되어 어서 일어나야했다.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약속하며 전화번호를 책 뒷면에 적어 드리곤 행사장에 다시 들어섰다.

 

드디어 열두시가 되고 원고는 속속 접수되어 책상에 쌓였다.

십분을 더 주겠다는 방송으로 마무리 들어갔다.

두시간을 주는 것은 너무 짧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옆에 도우미 하시는 분이 눈이 똥그래진다.

"십분이면 쓰겠건만 두시간도 짧데요?" 한다.

"글 쓰는게 얼마나 힘든데 편지를 써도 대충 한시간은 잡아 먹을건데요."

"편지 안 쓴지가 이십년도 넘어서 모르겠네요."

"한번 써봐여. 편지도 아니고 누가 쓰라고 하는 글 고민고민하는데도 한 시간이 넘는데 글 쓰기가 쉽진 않죠."

도우미 하시는 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감이 다 되어가는 것을 알고는 책상과 걸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같이 걸상만 양손에 하나씩 들고 두번 왔다 갔다 하였는데 혼자서 거뜬히 다 치웠고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는 말에 굳이 사양하며 따라 오지 않는다.

이미 봉고차에는 문협회원이 다 타고 있었다.

이제 가면 밥 먹고 언제 저 많은 원고를 읽어 봐야할지 머릿속으로 시간계산부터 들어갔다.

참가한 학생과 일반인 합치니 오백명 조금 넘는걸로 알지만 예전보다 많이 온게 아니라 했다.

지금이 11회인데 1회 때는 천삼백명이나 참가했다고 하니 반 이상 줄은것이다.

그만큼 책을 안 본다거나 글 쓰는것에 관심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세월이 하 수상(?)한 것과 연관이 있지 않나 싶으다.

 

예약이 되었는지 식당에 들어가니 반찬이 다 차려져 있었다.

앉자마자 밥이 나오고 펄펄 끓는 뚝배기가 따로이 나왔다.

아침을 일찍 먹고 오전 내내 서서 움직였던 탓인지 배고품이 더해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밥을 다 먹어가는 중에 대화는 회원들간에 오고갔고 나는 입도 뻥긋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나에겐 관심 없다는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 보는 사이에 서로 인사는 했어야 하는데 유럽여행 12박 13일간 이야기며 싱가폴로 중국으로 여행간 이야기며 이태리에서 벤츠를 렌트하여 명품사러 간 이야기에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가만히 듣고 만 있다가 후식으로 들어오는 식혜까지 마시는 중에 하나 둘씩 빠져 나가고 혼자 남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커피라도 마시고 들어 오겠거니 하는 차에 한사람씩 들어와 원고를 펼치면서 자리를 정하는것이다.

다른 행사로 겹쳐서 시끄러운 예술회관에 다시 돌아가서 심사하느니 그냥 이곳에서 심사하는쪽으로 의견을 모은것 같았다.

나는 이쪽에서 하는 소리가 나면 이쪽으로 고개 돌리고 저쪽에서 소리가 나면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고 있는데 문협회장이 자기 옆으로 오라고 하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자리를 바꿔 앉았다.

원고 심사는 회원들이 하고 나는 자기와 같이 다른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그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협회장이 하는 소리를 건성으로 듣고 있는데 사무국장이 나를 부르는 것이다.

"저기요~ 이름이 머라고...?"

회장이 얼른 대답한다.

"유경희씨..."

"아... 유경희씨~ 오늘은..."

그때 무슨 말 하려는지 다 알아차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두말 않고 일어나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하면서 구두를 찾아 신었다.

신발 찾는데 일미터도 안되는 거리였으니 망정이지 정신이 아뜩해짐과 동시에 혼미해졌다.

 

언제 한번 모임에 참석하라는 인사를 누군가 하였는데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식당을 나와 택시부터 찾았다.

걸어 오는 동안 머리속은 텅 비어지면서 그래도 기분 나쁘지 말자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자고 맹세부터 했다.

빈 택시가 자동으로 내 앞에 선다.

내가 한 길에 멍하니 서 있으니 누가 봐도 택시를 기다린다고 여겼을것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내내 찝찝한 기분이고 쪽 팔려서 미치겠다.

시장에서 입을 옷을 미리 슬이아빠 차에 실어 놓아서 정장을 쪽 빼 입은 채로 시장에 들어서야 했다.

시장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가게에 성큼 들어섰다.

슬이아빠는 없었다.

앞에 생선 파는 할머니는 슬이아빠가 금방 배달한다며 나갔다고 전해준다.

슬이아빠 올 때 까지 기다렸다가 키를 받아서 차에 있는 옷을 가지고 다시 가게로 왔다.

이층에 올라가서 옷 부터 갈아 입고 슬이아빠 얼굴을 쳐다 봤다.

나 없이 배달 전화가 두번이나 와서 혼자 다녀야 했다면서도 왜 이리 빨리 왔냐는 눈치다.

점심 먹고 원고를 보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예정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빠져 나오겠다는 언질을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온게 이상하게 여긴다.

"슬이아빠~ 나 실은 장사하려고 일찍 온게 아니고... 쫒겨 왔어.  밥 잘 먹고 나 앉았는데 하나 둘씩 빠져 나가더니 무슨 작당했는지 원고 심사한다고 자리 잡고 앉아서는 나를 다른 쪽에 부르더니 금방 분위기가 찬물 껴 얹은것 같았어. 이상하다고 여길 틈 없이 바로 일어나 온거여. 그제서야 어째 나한테 심사위원이라는 명찰도 안 달아주고 내는 안중에 없는 듯 자기네들끼리만 이야기 하고 먼가 이상타고 했어."

나는 말을 하면서 슬이아빠 눈치 살펴가며 다시 이야기 이었다.

"와... 나오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죽을 뻔 했지 모야. 어차피 붙잡아도 도망나와야 할 처지여서 고맙고 잘 됐다는 생각은 들지만 너무 괘씸해."

이야기를 듣던 슬이아빠가 한마디 한다.

"그냥 가만히 나왔나?"

"가만히 나오지 어떻게 하고 나와?"

"욕이나 퍼붓고 나오지 그래."

"모라고 욕해? 그런 생각 할 틈도 없었어. 어서 나오기 바빴으니까."

"부르기는 쫒 빨라고 불렀나? 하고 한 마디는 해야 할거 아이가? 얼굴에 똥 칠하고도 그 말 몬하나? 다음에 부르면 또 갈기가?"

"안가지... 절대루...회장이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어떻게 그런 욕까지 해 대노? 하지만 어서 나가 달라는 말 보다 더 싸늘한 눈치에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나왔자너."

"니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슬이아빠는 나를 쳐다 보면서 더욱 답답해 했다.

말 하지 말걸 괜히 했나 싶지만 나 대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 주니 나 혼자 들었지만 기분이 싹 풀린다.

남편 그늘이 좋다는게 이런거 였구나 하면서 무턱대고 행사에 참석한것에 대단히 후회스럽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오해도 풀겸 어떻게 해서 나를 자리에서 뜨게 했는지 자초지종은 이야기 해 주어야 옳을 일인데 협회장부터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어 서운함이 더하다.

평소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맑고 거룩할 것으로 믿었던 내가 바보지만 해도 너무한 상황이었다.

백일장에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된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차마 쪽팔리는 이야기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다.

하지만서도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않고서는 내 심장이 견딜것 같지 않아 그대로 적어본다.

이 순간부터 마음속에 담겨진 모멸감이나 그 시니컬한 분위기에서 완전 해방될것이다.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