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하루 가운데

사는게 그렇고 그런 가운데.

삼천포깨비 2008. 10. 25. 02:00

사흘을 슬픔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리 잡았다.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던지고 싶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맹수처럼 달리고 싶었다.

땅바닥에 구멍을 뚫고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폭포가 되어 지구가 둘로 갈라질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가누지 못해 머리는 맷돌 얹은 듯 무거워지고 심장이 뜨겁다.

눈물 콧물 범벅된 코주위를 닦으려 화장실 들어갔다.

코부터 팽~하고 시원하게 풀고는 거울을 들여다 봤다.

코 아래를 얼마나 문질렀는지 벌겋다.

여전히 큰 눈엔 눈물이 번들거렸다.

슬픈 얼굴이 아니고 무섭다.

난 천하에 못된 여자다. 정말.

 

누구보다 고마웠던 친구인데 갑작스레 이 세상을 버렸다.

아니 아파서...

3월부터 본인은 얼마 못 산다는걸 알았다는데 나는 몰랐다.

어서 툭툭 털고 일어나라며 우스개소리도 하고 장사가 안되어 힘들고 쪼달린다며 그 친구에게 병문안 대신 넉두리하고나왔다.

두번째 갔을 때는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깨우기가 뭣하여 살금살금 얼굴만 보고 나왔다.

못먹는다고 하여도 과일이라도 사 들고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생각만 하는 날 내동댕이 치고 훨훨 날아 가 버렸다.

장사 안 된다는 소리에 날 뒤따라 집사람 보내어 족발 사게 한 친구다.

아무것도 해 준게 없는데 염치좋게 받기만 한 낯짝 두꺼운 친구로 되어버린것이다.

 

시장에 장사할 때 어디에 쓰는지 누구에게 주는지 몰라도 왕창 떨이를 해주기도 했다.

작게 사든 많이 사든 꼭 우리집에서 사 주었고 슬이아빠 친구중에 유별나게 많이 찾아주었던 친구다.

내가 친구 마누라지만 갑장이라 하여 허물없이 지냈고 친구야~ 하면 내가 먼저 돌아다 보았을 정도다.

슬이아빠보다 더 많은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우연찮게 시장에 들렸다가 서울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소리에 기꺼이 자기가 차를 가지고 가겠다며 우리 부부를 태워서 편안히 서울을 다녀 오기도 했다.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오후에 삼천포에 도착해서 같이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소리에도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담날부터 사천시청으로 한마음병원으로 라이온스클럽으로 제이씨클럽까지 동행하여 책 소개를 하고 주문까지 받아냈고 알만한 사람한테 일일이 찾아가 너무도 자랑스럽다는 듯이 책을 소개했다.

덕분에 많은 책을 팔 수 있었고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알게 되었다.

심지어 사람을 시켜서 책을 팔아 주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 고마움에 한 줄 먹은 김밥값을 받지 않으려 해도 끝까지 돈을 챙겨주었다.

그런 친구가 아프다가 너무 많이 아프다가 뽀얗게 재로 날려갔다니 믿어질까.

대성통곡해도 슬이아빠는 이해를 하겠지만 남 앞에서 울음보 터트려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빈소를 못 찾았다.

그 친구 생각만해도 눈물이 줄줄거린다.

이불속에서 얼마든지 울 수 있었다.

울다가 졸리면 잤다.

자는 모습처럼 저 세상에서는 안 아프고 편하게 잘 살기 바란다.

 

아무튼 몹시 울다가 웃을 일이 생겼다.

우리 슬이 장학금(?) 30만원 받았다.

정말이지 친구의 죽음을 생각지 못했던것처럼 슬이가 장학금 받는다는 것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누군가의 기도에 응답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요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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