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오늘 밤 일기에는 이렇게 쓴다.

삼천포깨비 2011. 4. 30. 01:35

예외없이 봄이 왔고 아직도 시새움인지 바람이 심하다.

오랫동안 숨막히던 단절감에서 벗어나 거의 날마다 바쁘게 보내는 것도 새로운 소식중 하나가 되겠다.

아빠와의 이별과 함께 허전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산 사람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면서 내 몸은 잘게 부수어져 허공에 날아 가는 느낌이었다.

어쩔수없이 사는 것이고 죽지 못해 산다고 여겼다.

엄마도 죽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깊은 무력감속에 어느날 내 손을 잡고 일으킨 이웃이 있었다.

지금 절친으로 지내는 숙이씨와 둘이씨 자매들이다.

따지고 보면 내 막내 일곱째의 남편의 사촌누이여서 사돈지간이라는 건 전부터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오랜 동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눈 인사만 건네며 말을 트고 지낸 적은 없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부녀회에 나오라는 것이다.

글쎄...했다가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대답하였다.

십년 가까이 살면서 이사를 가거나 이사를 와도 알려 하지 않았다.

시내에서 알던 사람이 아파트 안에서 만났을 때 반가움은 그때 뿐이지 몇동 몇호인지 관심도 없었고 또 만나면 반가움을 다시 확인하는 걸로 만족했다.

 

밑도끝도없이 부녀회 나오라는 말에 의식하고 있다가 날짜에 맞춰 가게 되었다.

몇몇은 자연스레 아는 사이도 있는데다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구워 먹으며 월례회를 하는 날이라 낯간지러움에 많이 어색할 뿐이었다.

다음 월례회는 환상적인 타이밍이었는지 관광을 간다며 분위기가 후끈거렸다.

마침 일을 하는 중이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은 갈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어도 부녀회라는 집단의 행동에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와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회비만 달랑 내고 회사 핑계를 대어 관광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숙이씨는 미안함 컸는지 사돈지간이 친구로 착각할 정도로 날 챙겨주었다.

 

관광 다녀 오고 곧 자기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였다.

제사를 지냈다며 부녀회원들 거의 부른것 같았다.

중요한건 내가 이 아파트에 살면서 11층을 처음 올라가 본 것이다.

그 날 이후로 10층 현이씨 집에 12층 둘이씨 집에 14층 순이씨 집에도 가 보았다.

그러면서 내 슬픔은 아주 오래전 기억처럼 잠 자는 걸 느꼈다.

순간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은 필사적으로 내 몸 전체를 물줄기로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날마다 9시 반쯤이면 커피타임이라는 문자로 우리의 일과가 시작이 된다.

내 손을 잡고 부녀회에 갔던 것 처럼 헬스장에 갔다.

시체처럼 거의 움직임 없던 몸이 70키로를 육박하고 있었다.

헬스장에 가겠다고 마음 먹는데만 보통 힘겨운게 아니었다.

어느새 내가 이렇게 변했는지 몰랐다.

몇차례 다이어트 시도했었고 번번이 실패하면서 자신을 지키겠다는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아마 삼년인가 사년째 새해 목표가 다이어트를 끼워 넣었던걸로 안다.

올해는 아예 포기상태로 새해 계획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헬스 두달만에 몸무게 6키로를 뺐다.

아직 멀었지만 턱 하나가 사라졌고 이목구비가 뚜렸해 졌다.

출구를 잃어 버렸던 내 희망의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숙이씨와 둘이씨 자매였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커피타임이라는 문자에 11층에 올라가 커피 한 잔 홀짝 마셨다.

친정 엄마가 뜯어 준 산나물이 많이 세어져 데쳐서 소쿠리에 널어 놓고 날 보고 가져다 먹으란다.

부추에다 홍합 넣고 잔파에다 달래까지 넣은 부침개 부칠거라고 했다.

어떻게 뺀 살인데 먹으라면 다 먹어야하는지 고민하는 순간이다.

 

오늘은 헬스 쉬는 날 도서관 가는 날이다.

무진장 바쁜 일로 세권중 두권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졸지에 아파트 부녀회 감사를 맡았고 작은도서관 추진위 감사에 동대표 뽑는 선관위위원까지 맡게 되었다.

동대표 뽑는다고 투표함을 들고 일일이 방문하여 도장을 받아야 했다.

나흘째 개표를 했고 이제 동대표 임원 투표가 남아 있어 아직 진행중이다.

작은도서관은 지난 회의때 통과되었던 리모델링 업체건이 다시 회의를 하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그러면 다시 저녁시간이지만 한두시간 뺏기게 된다.

거기다 부녀회에서 주말농장 50평을 하게 되었고 괜한 짓을 한게 아닌지 걱정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꾸려가고 있다.

50평 모두 거름을 주었고 30평은 씨 뿌렸고 10평은 비닐을 씌웠다.

이제 모종하는 날만 잡으면 된다.

이 바쁜 와중에 실용음악학원에 기타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다른 코드를 옮길 때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여 리듬이 끊어진다.

연습만이 실종된 음을 찾는 길이다.

사랑해 당신을~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이 두곡만으로 손톱밑이 약간의 통증과 함께 감각이 무디다.

이모든 바쁜날이 제외되는 금요일엔 그것도 한 주 건너 뛰고 책 반납하고 대출해 온다.

 

도서관 가는 길은 운동하는데 활용하게 된다.

숙이씨와 커피 마시고는 부침개의 유혹도 뿌리치고 나와 책보따리 메고 걷는다.

땅을 보고 걷고 하늘 보고 걷고 산을 보고 걷고 옆을 보고 걸었다.

문득 아빠가 그리워진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아무도 없는 길 편안히 소리없이 울었다.

보고 싶다. 아빠가....하다가 금새 눈물 감추고 도서관에 들어 갔고 책 반납과 동시에 이번엔 문학상 작품집하고 탈냉전시대의 소설집을 꺼내 들고 나왔다.

 

이마트가 근처에 있어 길을 건너 들어갔다.

지난 일요일 청주 친구가 싸가지고 온 월남쌈이 맛이 괜찮았다.

만들어서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맘에 월남쌈 재료부터 찾았다.

오랜만에 왔는지 살게 눈에 많이 들어 온다.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용강주공부녀회 적립금에 다시 확인하고 무거운 보따리 때문에 택시를 불렀다.

기사는 보자마자 반가운 눈치다.

지금은 무얼하는지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대답에 글은 계속 쓰는지 궁금해 했다.

글요???

대답하기 전에 아파트 앞에 닿았다.

기사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 설 때 내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다.

숙이씨가 내가 어디있는지 묻는다.

늘 같이 행동하다가 내가 아침부터 내빼는 바람에 생각을 못하고 장에 먼저 내려 와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장을 다 본 상태라 맘편히 장 보고 오라고 다시 문자 넣었다.

그러곤 월남쌈을 쌌고 실패작이 꽤 많았다.

장보고 오는 시간에 맞추어 11층에 들고 올라갔다.

같이 커피 마시고 하던 일 마저 끝내기 위해 내려와야했다.

 

틈틈이 기타연습에 갈라진 손톱을 정리하고 매니큐어도 새로 발랐다.

퇴근시간이 넘었는데 슬이아빠도 오지 않고 슬이도 다른 길로 샌거 같아 야근 마칠 때 까지 시간이 있다.

어제 현이씨 컴퓨터 다음에 가입시켜 주었고 c드라이버에 숨어있는 노래도 찾아 주었다.

오늘은 사진을 넣어 줄 마음에 월남쌈을 담아서 올라갔다.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현이씨 보면서 맘 놓고 어울려 보려 했는데 슬이아빠 퇴근시간이였다.

씻고는 술생각 났던지 술을 찾는다.

술상을 앞에 두고 현이씨 집을 다시 올라 가기엔 맘이 걸렸다.

같이 한잔 하자고 문자를 넣고 통화를 해도 못 오겠다는 말만 되풀이다.

하는 수 없이 오늘 올려 주겠다는 사진 다음으로 미뤘다.

 

열시에 슬비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추우니 택시 타고 오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내려 오란다.

방울 토마토와 월남쌈에 양주 한잔이 몸속에서 분해 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화끈을 바싹 맸다.

시내를 한참 내려와 교육청 쪽에서 슬비를 만났다.

올라 오다가 둘이씨 하는 노래방에 목을 쑥 빼고 들여다 보니 둘이씨가 들어 오라고 한다.

슬비도 싫지 않은 눈치여서 커피라도 얻어 마시려 했다.

둘이씨가 롤케익을 접시에 담고 데미소다를 슬비에게 주었다.

슬비 배고픈 문제를 여기서 해결되어 나로선 좋았다.

장삿집에 드나드는 손님 눈치때문에 오래 머물수는 없었다.

슬비 손 잡고 천천히 늦은 밤길을 걸었다.

희미한 빛 조차 없는 밤하늘 보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가 손을 흔든다.

아빠에 대한 기억 내가 얼마나 살아야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