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
안녕하세요...
홍
오늘은 어떤 얘기 들려주실건가요?
유경희
오월의 햇살이 내리는 곳마다 싱그런 풀냄새가 나고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데요.
꼬옥 첫사랑할때 맡는 냄새 같아서 오늘은 첫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한번 해볼까해요.
민
원래 시장통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장사하시는 분들의 구수한 첫사랑 얘기,
많이 나올 것 같은데..어떠세요?
유경희
그럼요.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거예요. 그런데 시장통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들이 첫 사랑 그게 뭐냐고 그러세요. 연애질은 꿈도 꾸지 못했고 시집갈 때 사진 한 장 달랑 받아들고 맘에 드니 안드니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냐고 하지요. 무조건 집안에서 날 잡으면 그날로 시집가고 그집 귀신이 되는줄 아는거죠.
우리 시장통에 철띠기 할머니라는 분이 계시는데요.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사진도 못 봤데요.
열여덟에 시집가서 십년살았는데 남편이 돌아가셨데요.아이 셋 키운다고 지금까지 허리 한번 못피고 살았다잖아요.
제가 왜 혼자 사셨냐고 했죠. 그러니까 왜 혼자냐고 했어요. 아이들 셋이나 있는데...
홍
아휴..혼자 아이 셋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유경희
어쨌든 시장통 사람들은 이 첫사랑 이야기를 장사할 때도 잘 써먹어요.
우리 시장통에 '자리에 붙어 있지 않고 하두 여기 저기 쏘다닌다는 이유로 '쏘대이모'라 불리는 언니가 있는데요.
쏘대이모는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팔거든요. 귀한 더 덕을 팔때도 있고 바다에서 나는 전복도 팔때도 있어요.
흔하면 갖다 팔지 않아요. 물메기나 멸치나 오사리라고 하면 아무리 비싸도 사거든요.
주위에 사람들이 기술도 좋다고 감탄을 할때가 많아요. 어디서 이런 좋은 물건 구해오냐고 하면
그럴때 마다 '첫사랑이 갖다 주더라..'는 말을 하죠.
민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잘 쓰지 않는데 시장통에서는 마구 마구 써도 늘 재미있겠어요.
할머니들은 지금의 우리 세대와는 너무 다르게 사셨다고 생각이 되네요.
유경희
하지만 겉으로는 말을 안해도 어쩌면 할머니들도
가슴속에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거에요. 어제 깜짝 놀란 기사를 봤어요.
피천득 시인님 아시죠? 일생을 그리워 하면서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평생을 그리워 하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인연'에 있던 첫사랑에 대한 글 다들 아실텐데요.
지금은 95세가 된 피천득 시인의 첫사랑이야기가 실렸던데요. 70년전의 사진을 곱게 간직한 첫 사랑을 공개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한번 보고 싶어 상하이까지 다녀왔다고 했어요. 아마 70년동안 사진속의 모 습 그대로 가슴에 담아둔거 같았죠. 싯귀에도 잊혀진 여자가 가장 불행한 여자라고 했는데 70년을 잊지 않고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
유경희씨는 어떠세요. 행복한 여자쪽에 속하시나요?
유경희
당연하죠. 같이 살고 있는 슬이아빠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를 기억하고 있는 첫사랑에게 고마움을 느낀답니다. 저는 어렴풋한데 첫사랑이라고 우기니까 그런가보다 해요. 우연찮게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어요.
이름을 검색하니까 무슨 무슨 박사라고 나오드라고요. 당장 멜을 보냈어요. 무조건 반가워서요.
첫사랑이 더 반가웠데요. 어디서 뭘하는지가 제일 궁금했나봐요. 이십년만이니까요.
시장에서 튀김장사를 하고 있고 솔직하게 일상에 대해 털어놓았어요.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담담하게 얘기했어요.
어쨌거나 애틋한 사랑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가슴이 아릿하더라고요.
민
유경희씨 남편분은 뭐라고 하세요?^^
유경희
제딴엔 흥분이 되어서 첫사랑 비스므리한 사람이 대학교수가 되어 있더라고 했더니 듣기만 했어요. 워낙에 말이 없는 사람이라서 혼자 떠들려니까 재미가 없드라고요.
홍
어쨌든 이 첫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유경희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뤄지고 안이뤄지고를 떠나서 빛바랜 사진이지만 가끔 꺼내서 들여다 보고
슬그머니 웃음을 지어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게 아닌가 싶네요.
홍
네..오늘도 재미있는 얘기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읽기, 삼천포 시장아줌마
유경희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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