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도록 개구리 소리 들으면서 시적인 분위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자야하는데...
잠이 와 죽겠는데 저놈의 개구리는 잠도 없다.
그러다 누가 조화를 부렸는지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벌써 아침이였다.
슬이아빠가 공차러 나가는 모양이다.
뒤따라 일어나 컴을 켤까 청소하고 빨래를 미리하고 나중에 한숨을 더 잘까...
궁리하는데 다시 문이 열린다.
자다 일어나는 척 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밖에 비가 와..."
혼자 누워서 자던 방으로 들어와 은근 슬쩍 발을 집어 넣는다.
슬이아빠가 눕던지 말던지 일어났다.
원래로라면 이 시간에 일어날 내가 아니다.
김밥 다섯줄을 싸 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일어난것이다.
쌀 한공기 퍼서 밥솥에 넣고 손을 휘휘 저으며 씻었다.
가스불을 켜놓고 베렌다로 갔다.
슬이아빠가 들어오면서 비가 온다는 소리를 했기때문에 밖을 내다보고 싶었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아침이다.
새벽이라기도 아침이라기도 어중간한 시간이다.
동신네가 다섯시에도 훤하다고 했다.
동신네는 아침장에 가는 시간인데 난 세상모르고 자는 시간이라 모른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난 시간이다.
오느새 밥솥에서 쉭쉭 소리를 내며 꼭지가 뱅글 뱅글 돌고 있다.
얼른 불을 낮추고 아이들을 깨웠다.
일찍 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말을 안듣더니 늦잠이니 내 딸이 맞나? 맞다!
첨에는 다정하게 불렀다.
"세상에서 젤루 이쁜 슬비 일어나라..."
궁둥이를 툭톡 두들겼다.
"안 일어날끼가? 인자 부터 안 깨운다...학교를 가든지 말든지 알어서 해라?"
이불을 덮지도 않고 깔고 자는 폼이 길 가던 나그네가 곰을 만난 꼴이다.
죽은 척을 하는지 자는 척을 하는지...
아니 되겠다 싶어서 현관문을 열고 베렌다 쪽 문까지 열었다.
비바람이 세게 들어왔다.
딸 두 년이 온 몸을 배추벌레처럼 돌돌 말고는 이불을 끄집어 당긴다.
어림없다...
더 이상 봐 줬다가는 학교고 김밥이고 죽도 밥도 안되게 생겼다.
"파리 채 어디 갔지?" 하면서 몸을 일으키니 총알같이 화장실로 튄다.
어느정도 컸어도 파리채의 효력은 여전하니 이제부터 옆구리에 차고 있어야겠다.
그렇게 아이들 먼저 보내고 김밥을 다섯줄 말아서 은박지에 싸서 봉지에 담아놓고
슬이아빠 씻는 동안에 밥상 차리고 여유있게 편히 앉아 티비를 봤다.
슬이아빠는 아침먹고 화장실 한번 더 다녀온 후에야 배달과 함께 출근이다.
샤워를 할까 컴을 켜고 앉을까 팬티바람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샤워로 결정했다.
이제 아무도 없는 시간인데 현관문 부터 잠궈놓고 발가벗고 춤을 추든 지랄을 하든 내 맘이다.
거울을 보니 짜증이 확 일어났다.
머리카락은 머리카락대로 처치 곤란이고 볼태기 살이 예전같이 탄력이 없어졌다.
돈 아낀다고 화장품가게에서 염색약을 샀다.
집에서 염색한것 치고는 물이 제대로 들어서 흰머리는 감쪽같이 없어졌다.
문제는 파마기가 없어서 얼굴이 더 추레해보인다.
나이를 오버했다는 경고등이 번쩍 번쩍대는거 같았다.
똥배도 문제다.
똥이 응고되어서 창자에 붙어 버렸는지 뱃살이 자꾸 늘어난다.
지방때문인지 똥때문인지 알게 뭐냐고 물 틀어 놓은 욕조에 들어앉았다.
나는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다 씻고 로션바르면서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바짝 마른수건으로 털면서 방에 들어와 컴을 열었다.
음악이 저절로 나오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클릭했다.
밖에 비...
음악도 비에 맞춘 듯 하다.
무언가 절망적이고 다 포기한 듯 하면서 태연한 음악이 날 즐겁게 해주었다.
나처럼 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슬프거나 잔잔한 음악도 예외적으로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음악듣고 커피도 마시고 상상도 하는 시간이 금방이다.
시장통 출근이 열한시를 넘어섰다.
비가 더 세게 올 모양이다.
그림을 그리라면 사포지에 면도칼로 직선을 긋는...그 정도이었는데
조금있으려니 빗속에 서 있다면 숨도 쉬지 못할만큼 세차다.
결국 일이 터졌다.
김치가게와 횟집사이에 천막에서 물이 흘러나온다는것이다.
김차가게에서는 횟집이 천막을 한쪽을 낮게 기울여주면 문제 없다고 했고
횟집에서는 그래도 마찬가지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고 내린 쪽을 다시 올려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항아리 깨지는 소리로 변했다.
올려라 내려라 반복하다 나중에는 '아줌마'에서 '당신'으로 했다가 막판엔 '니'가 어쩌구 하면서 빡빡 달려들었다.
어쨌거나 시장통은 위 아래 따지면서 점잖게 싸우는걸 본적은 한번도 없다.
그래도 그렇지...
짚어 보면 열 대여섯은 차이가 나는데 좀 아쉽다.
횟집은 바닷물고기라서 빗물이 쏟아지면 바로 죽음이란다.
김치가게도 마찬가지다.
반찬에 빗물이 떨어지면 맛도 그렇고 빗물 따로 받쳐 들고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싶다.
해결은 비가 안 오는 수밖엔...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비라지만 싸우게 된다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한테 전해야겠다.
무심하게 비는 종일 내렸다.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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