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길을 묻다/시장통 이야기

젊은날의 기억들...

삼천포깨비 2005. 6. 12. 23:13

"뽈똥이 다 나완네..."

"저게 머라꼬예?"

"뽈똥~~ 보리 뽈똥~~"

"아인데? 물 앵둔데... 보리 빌 무렵에 나무 앵두가 나올때 아이가..."

"뽈똥 마따...내 어릴때 보니까 우리 세이가 장또깐 옆에 심어 난는데 뽈똥나무에 넝구리가 붙어가 발발 떨었다 아이가? 앵두가 머꼬? 앵두 아이다."

"요새도 넝구리가 나온다카데..."

"하~ 잘 안보이든 넝구리가 어디서 기이 나오는지 보이드라."

"넝구리가 너그 밭에 쎄빗을기다."

"넝구리는 죽은 사람 아이면 안 물어 땐단다."

 

석봉이 엄마가 바쁘게 옥수수를 이고 오는 사람에게 셈하고

산딸기 이고 오는 사람에게 셈하고

비아를 박스로 담아와서 비싸다고 흥정에 들어가는데

앵두랑 뽈똥을 가지 채 꺽어와서 앵두값만 쳐 달라고 허리 구부린 채 기다리고 서 있다.

산수유같기도 하고 앵두같기도 한 뽈똥을 가지 채 한 아름 들고 있는걸 본 할머니들이 불현듯 떠오른 생각때문인지 이야기꽃이 피었다.

마음마저 갈 수 없는 추억이 된 옛날 저편에 앵두나무 우물가가 젊은 날의 보금자리였다.

반은 알아 들을 수 없는 속닥거림들을 귀 기울이다 중간에 말을 끊었다.

"할매~ 넝구리가 너구리라는거예요?"

"뱀이가 넝구리라고 있는데 빨개가꼬  해거름때 어스름할때 잘 나타난다. 사람이 보여도 죽은거 맨치로 가만 있으니 산 사람은 안 해치고 죽은 사람만 해친다카지..."

"독새는 악질이고..."

"독사라는게 사람이 있으면 안 보는 척 하고 반쯤 머리를 돌리는 척 하다가 언제 사람을 물어 때삐는지 순 악질중에 악질이이가..."

철띠기 할매는 진저리치면서 입꼬리에 흰거품까지 고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독사한테 물려서 된통 혼이났던 적이 있어 보인다.

 

"할매~ 잘 삽니까?"

며칠동안 보이지 않던 대포띠기 할매가 시장통에 나타났다.

손에 든것 없이 옷차림도 깨끗한걸 보니 장사하러 온 폼은 아니다.

"하이고~ 이쁘그로 해가 온다..."

선이할매가 진달래빛 나는 브라우스가 곱게 보였나 보다.

대포띠기 할매는 금새 얼굴빛이 붉어진다.

내가 본 아름다움이라는거...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았다.

"오늘까지 모 슴그고 낼 부터 나올끼라. 참거리도 사고 고등어 사서 쫄아서 반찬해야쥐..."

대포띠기 할매는 얼른 짧막한 말로 얼버무리고는 그동안 감자캐서 맡겨놓은 고무대야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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