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추석을 잘 보내고 왔는데...

삼천포깨비 2005. 9. 19. 22:27
기분이라도 흥청망청 내던 추석이었다.
올해는 그것마저도 쓸데없는 짓 같아 보이는지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왔노라고 알리지도 알려고도 않는 고향에서 삼일을 보내고 온 것이다.
부모님 비위맞추려 간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재미보자고 간것도 아니지만 참 재미없었다.

내 경우엔 아들 하나 없이 딸 일곱인 집안에 큰 딸이다.
해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는건 당연하게 여기시니 만사 제쳐놓고 친정으로 달린다.
같이 가 주는 슬이아빠가 고맙고 이쁘다.
그랬는데,
이번엔 뭐가 잔뜩 틀어져서 안 오겠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고 삼천포 내려간단다.
장사도 안되는데 하루만 더 있다가 가라는 아버님 말씀에 더 눌러 있으려 했는데 그만 내려오게 되었다.
조수석에는 슬이를 앉히고 뒷좌석에 슬비와 둘이서 앉았다.
내려오는 동안 내내 말 한마디 안했다.
여주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우동으로 점심 때우고는 내리 달린다.
슬비가 오줌이 마렵다 해도 뒤도 돌아 보지 않더니 덥다면서 짜증을 부리니 에어콘을 켠다.
휴게소에만 내리면 하도 이것 저것 사달라는 통에 슬이아빠가 모른척했을것이지만 좀 너무 한거같다.

추석하면 젤 큰 명절이다.
그래서 늘 고속도로는 굼뱅이처럼 꿈틀거리기만 하지 더 이상 움직일 줄 모르던 때가 언젯적인가 싶다.
빽빽이 줄을 선 자동차 틈 사이로 뻥튀기 아줌마들이 더 신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휴게소에 식당은 식당대로 화장실은 화장실대로 선 줄이 몇십미터가 되었는데 이번은 전혀 아니다.
시장안에서만 뺑뺑이 돌다가 밖에 나오면 색다를까 싶었는데 경기를 타는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차림새나 분위기에서 느낌이라는게 있다.
얼마나 쓸 작정인지도 한눈에 보이는데 내가 보기엔 추석과는 전혀 관계없었다.
올라갈때나 내려올때도 백키로 이상을 달리면서 아주 짜릿한 통쾌감을 맛보았다.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편하게 다닐 때도 있구나...

결코 내가 돈이 많아서 움직인건 아니다.
일년에 한번 아니면 두번인 고향방문에는 넉넉히 계획을 잡아둔다.
평소에 한발자욱 움직이지 않으려는 내 의지대로만 하면 펑펑(?)쓰고 온다.
부모님 용돈 십만원씩 드리고 오르고 내리는 기름값에 도로비에 밥값이 이십만원 잡으면 된다.
조카들에게 만원씩 고스톱치면서 잃어주는 돈이 한 삼만원?
이렇게 잘 쓰고 오는데 슬이아빠가 삐친것이다.
성질 급한 내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슬이아빠는 왜 자기 손으로 건네지 않게 하냐고...
둘이 같이 쌔가 빠지게 번 돈을 내가 주면 어떻고 지가 주면 어떤데?
그게 발단이 되어서 작년에 싸운 일부터 살살 끄집어 내다가 친정 엄마한테 한방에 뻑 갔다.
"우서방 처럼 나가서 돈 벌어오면 마누라 고생 안 시킬텐데..."
세째 제부를 비교한것이 탈이 난것이다.
내년부터는 혼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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