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야기/쉼표

가을 때문인지...

삼천포깨비 2005. 10. 3. 00:25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가을은 놀랍게도 가슴속에 미리 자리잡고 있었다.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것도 아닌데 눈물이 찔끔 찔끔 난다.

티비를 보다가 친구가 군대가는데 이별이 아쉬워서 노래자랑에 나왔다는 소리에도 울컥했다.

부모님 제주도에 보내드리고 싶어서 노래자랑에 나왔다는 소리에도 코를 풀면서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와 딸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난다.

추석에 집에 가서 나를 슬프게 하는 소식이 있었는데 어떤지 궁금하다.

몸이 예전같지 않게 많이 불편해 하시는  안 좋아지신걸 느꼈다.

다방에 커피 한잔 하시고 계단을 오르시다 다리에 힘을 잃고 풀썩 주저 앉으셨단다.

여전히 술과 담배는 양을 줄이지 못하시니 더 큰일났다.

아버지 생각에 아예 왕창 울어버렸다.

 

노래나 잘하면 아버지하고 손잡고 노래자랑에 나가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나도 예전엔 노래를 좀 한다고 앞에서 잘 불렀는데 노래 불러 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남들은 노래방도 잘 가는데 내 기분으로는 간 적이 없다.

모이면 가는 곳이 노래방이다.

하는 수 없이 따라가서도 거의 부르지 않는다.

노래부르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는 백댄서의 흉내도 못내고 그냥 꿔다 논 보릿자루다.

억지로 마이크가 손에 잡히면 난 자동으로 '남포동 부르스'를 부른다.

좋아하는 노래도 아니지만 가사를 잊어 먹지 않아서 부르는것 같다.

하필이면 니나노집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같다.

쇠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거나 냄비가 몸살나게 만들면서 자신의 삶을 어둡고 슬프게 구성지게 부르짖는 듯 냉큼 냉큼 아리랑고개를 잘도 넘는다.

다음번에 노래방에 가게 된다면 노래를 바꾸리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아이~ 이것도 아닌데.

짠짠짠~ 하게 하지 말아요. 말없이 그냥 가세요. 짜라짜짠짠짠~

이게 좋겠다. ㅎㅎㅎ

 

울기에 더 적당한 하늘을 보면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커피 두스푼에 설탕 한스푼하고 프림 한스푼을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휴식은 정숙하고 여유로우며 아름다워야 한다'고 나는 두다리 가지런히 모으고 의자에 앉았다.

글대로 따라하면 얼마나 멋지고 품나는 휴식이겠는가.

시장통에서의 휴식은 한마디로 어림없는 일이다.

마치 배에 힘껏 힘을 주고 숨을 쉬지 않은 채로  옷을 마추고 그 옷을 입었을 때 재채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움이라 할까...

자연적으로 어깨가 굽어지고 배는 처지고 다리는 풀리어서 헬렐레한 모습으로 홀짝 홀짝 몇모금 마시다가 어느새 후루룩 마시고 빈 종이컵 안을 들여다 본다.

나 혼자 맛있게 잘 마셨지만 아마 어디서 누군가가 본다면 그걸 의식하였다면 난 다시 다리를 오무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야릇한 웃음을 지어본다.

이 가을에 부를 노래 하나 생각하는데 수수께끼푸는것 보다 더 어렵다.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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